자영업자는 일반 소비자보다 ‘인플레이션 쇼크’를 더 크게 받는다. 식자재 업체, 편의점·프랜차이즈 본사 등이 식자재 가격을 올려도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그 인상 폭이나 횟수가 일반 소비자 대상(B2C) 제품에 비해 더 크고, 잦은 경향을 보인다.
여기에 배달 수수료, 인건비, 대출금리 등도 전방위적으로 뛰어 부담을 더하고 있다. 버티지 못한 자영업자들은 줄줄이 폐업에 나서는 실정이다.
빵집 주인들이 인플레이션의 대표적인 ‘희생양’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상기후 등의 직격탄을 맞은 밀이 주원료인 제품을 파는 탓에 다른 업종에 비해 타격이 유독 더 크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은 24일 서울 신촌 대학가에서 영업하는 제과점을 찾아 올해 들어 비용 부담이 얼마나 커졌는지 취재했다. 주인인 김모씨는 “식자재 중 오르지 않은 게 없다”며 “5000원짜리 케이크를 한 조각 팔면 3000원이 비용으로 빠져나간다”고 토로했다. 케이크는 밀가루에 계란, 우유, 버터, 설탕 등을 섞어 만든다. 생크림과 함께 과일을 얹어 내놓기도 한다.
김씨가 가장 큰 부담을 느끼는 건 밀가루 가격이다. 미국 시카고선물거래소에서 국제 소맥 가격은 부셸당 1034달러에 형성돼 있다. 연초 대비 36% 상승한 수준이다.
국내 밀 소비분의 99%가 수입되는 만큼 이런 전 세계적 흐름에 밀가루 가격이 영향을 안 받을 수 없다. 가격비교 사이트 다나와에 따르면 CJ제일제당의 백설 박력분(20㎏)은 작년 말(1만6670원) 대비 85.8% 급등한 3만980원에 판매된다. 크로플 생지(32개입)는 작년 1만3000원대에서 올해 1만6000원대로 20% 이상 상승했다.
계란, 우유 등 유제품 가격도 오름세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지난달 특란 한 판의 평균 도매가격은 5662원으로 작년 말보다 13.4% 상승했다. 특란의 소비자 가격은 6791원으로, 조류인플루엔자(AI)로 계란값이 치솟은 1년 전(7535원) 가격을 향하고 있다. 우유(1L) 가격은 1월보다 22.8% 비싼 2739원이다.
이 밖에 삼양사의 업소용 설탕(15㎏)은 1년 전 1만2420원에서 1만5830원으로 27.5% 올랐고, 바나나·청포도 등 수입 과일 가격도 작년보다 비싼 가격에 사들여야 한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코로나19로 글로벌 물류비용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수입 과일 가격도 많이 올랐다”며 “바나나, 포도는 1년 전보다 두 자릿수 이상 비싸졌다”고 밝혔다.
이화여대 인근에서 프랜차이즈 와플 전문점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와플은 가격이 비싸지 않은 간식이라 가격을 500원만 올려도 손님 수가 줄어드는 게 체감된다”며 “이익이 나지 않아 폐업까지 고려 중”이라고 했다. 대학가의 주 소비층은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대학생들로, 이들 입장에선 와플이 가격 인상에 따른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소비해야 하는 품목이 아니다. 김씨는 “최근 몇 년간 디저트 전문점이 젊은 층 고객들에게 각광받고 있어 창업했는데, 소비 위축의 타격도 가장 먼저 받는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식자재 비용 증가를 가까스로 버텨내도 대출 금리 상승, 최저임금 인상이란 또 다른 벽까지 넘어서기는 쉽지 않다. 이에 따라 자영업자들은 영업시간을 단축하거나 재료의 양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서울에서 버거 가게를 운영 중인 이모씨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점장 한 명 외에는 파트타임 종업원을 쓰고, 저녁 홀 마감 이후 한 시간 동안은 배달만 하는 식으로 운영 방식을 바꿨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물가 상승으로 인한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다른 비용 역시 하락할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다.
김종진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우리나라는 식품 제조와 배합사료에 사용되는 곡물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국제 곡물 가격 변화가 국내 가공식품, 축산물, 외식업 물가에 순차적으로 영향을 주는 구조”라며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국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경제/최세영 기자 hanky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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