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 역세권 청년주택 사업부지 상당수가 ‘빈 땅’으로 수년째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지하철 초역세권 노른자 땅인 데다 용적률 인센티브까지 파격적으로 적용해 기대를 모았지만, 막상 인허가 단계에서 민원에 발목이 잡혀 착공이 차일피일 미뤄진 탓이다. 원자재값 인상에 따른 공사비용 증가로 사업자가 시공사를 구하기 어려운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역세권 청년주택은 교통이 편리한 지하철 역세권에 만 19~39세 청년 혹은 신혼부부를 위한 공공·민간임대 주택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출퇴근 교통이 편리한 데다 주변 시세 대비 30~50%가량 저렴한 월 임대료에 인기가 높다. 서울에서 주택을 지을 땅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재개발·재건축 외에는 역세권 고밀개발이 주택 공급의 거의 유일한 해법이지만 기대만큼 사업 속도가 나지 않는 상황이다.
서울시는 공급 확대를 위해 지하철 승강장 350m 이내 부지에 토지 용도에 따라 최대 680%까지 용적률을 허용하고 있다. 문제는 서울시가 사업승인을 해줘도 착공 단계에서 구청의 문턱을 넘기 어렵다는 점이다. 민간 사업자는 구에 신고한 뒤 착공 허가를 받아야 공사의 첫 삽을 뜰 수 있다. 사업자가 법령과 조례를 준수해도 인근 주민과 상인들이 민원을 제기하면 구에서 허가를 꺼려 착공이 늦어지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일반 공사 현장에서 민원이 발생할 경우 개발업자가 보상금 등으로 해결하지만 서울시 정책에 따라 진행하는 역세권 청년주택은 민원에 대한 개별적 보상이 어려운 구조다. 김 팀장은 “이미 사업승인을 받은 부지의 상당수가 이런 문제로 발목이 잡혀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 지하철 3호선 양재역 인근 1010㎡ 면적의 부지는 1년4개월 동안 공터로 방치돼 있다. 지난해 2월 역세권 청년주택 공급지로 지정됐지만 아직 착공조차 못 하고 있는 실정이다. 바로 옆 상가용 빌딩은 역세권 청년주택 부지보다 3개월 늦게 부지 매입이 이뤄졌지만 근린생활시설로 분류돼 착공 허가가 빨리 나 현재 골조 공사를 하고 있다.
최근 서울시는 올해 일몰 예정이던 역세권 청년주택 사업을 3년 더 연장하기로 했다. 사업 종료를 앞두고 신청 사업장이 2020년 80건(3만4000가구)에서 작년 20건(6700가구)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한 개발업체 대표는 “아무리 좋은 땅에 용적률을 올려줘도 디벨로퍼(시행사) 입장에서 인허가 지연은 사업성을 크게 떨어트리는 요인이어서 사업 도전자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에서 사업승인을 빨리 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착공·준공 승인은 구의 몫”이라며 “일부 사업장은 민원뿐 아니라 공사비용 증가 문제로 시공사 선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박종필/이혜인 기자 jp@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