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펌프·필터 끊겨 패널 증설도 '스톱'…디스플레이 '연쇄 셧다운' 위기

입력 2022-06-27 17:45   수정 2022-06-28 01:19

“전례 없는 ‘연쇄 공급망 붕괴’가 한국 디스플레이 시장을 덮치고 있다.”

한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최근 국내 디스플레이 시장 내 조짐이 심상치 않다며 이같이 우려했다. 장비 부품 확보가 안 돼 장비 공급이 막히고, 디스플레이 생산 계획에 차질이 발생하는 등 공급망 문제가 도미노처럼 번지고 있어서다. 글로벌 부품 공급망이 흔들리자 대체 가능한 부품을 만들 기술도, 여력도 없는 한국 장비 부품업계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실상의 근본 원인으로는 열악한 국내 ‘장비 부품 생태계’가 지목되고 있다. 지난해 국내 디스플레이 장비시장에서 한국산 부품의 점유율은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연쇄 붕괴…위기감 커져
27일 한국경제신문이 확보한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의 ‘디스플레이 장비 핵심 부품 시장 현황’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디스플레이 장비 부품의 국산화율은 9%에 그쳤다. 한국 디스플레이 장비 업체는 핵심 부품 상당수를 해외에 의존해 오고 있는 셈이다. 부품 시장 점유율은 미국산이 37%로 가장 높았고 일본산 29%, 유럽산 19% 등 순이다. 디스플레이 장비 부품 관련 국가별 점유율 등에 대한 분석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디스플레이 업체들 사이에 최근 “디스플레이 장비가 제때 공급되지 않아 제품 생산에 막대한 차질이 생기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자 협회는 이 같은 실상을 파악했다는 후문이다. 글로벌 공급망이 뒤엉켜 해외 장비 부품을 확보하지 못하자, 장비 납기까지 지연될 정도로 국내 부품 생태계가 열악한 것으로 분석됐다.

한 장비업체는 “핵심 부품 중 하나라도 납기 지연이 발생하면 장비 출하 일정을 지킬 수 없다”며 “길게는 1년까지 부품 확보가 늦어져 경영 계획에 비상이 걸렸다”고 말했다. ‘약속 기한 내 납기’가 생명인 장비 수출이 막막해졌다는 토로도 이어지고 있다.
韓 공급량 ‘0’ 장비 부품도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꼽히는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디스플레이 5대 장비에 들어가는 부품 중 하나인 ‘터보 펌프’는 한국산이 전혀 없다. 영국산과 일본산 점유율이 각각 40%로 가장 많고, 독일산이 20%다. 3.5개월 걸려 받던 이 제품은 요즘 2.5개월 지연돼 6개월 뒤에나 받을 수 있다. 배관에 흐르는 가스 이물질을 모으는 ‘가스 필터’는 미국이 80%, 일본이 20%를 공급하고 있다. 이 부품의 납기 기간은 기존 2.5개월에서 11개월로 8.5개월 지연되고 있다. 이 밖에 진공 로봇, 모터 등도 종전보다 각각 2.5개월, 6개월 공급이 늦어지고 있다.

장비 부품은 짧게는 6~12개월, 길게는 5년 주기로 교체가 필요하다. 대부분 장비업체는 장비 공급 후 부품 교체 등 사후 관리까지 담당한다. 질 좋은 부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게 장비업체는 물론이고 디스플레이 업체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구조다.
부품 협의체 만든다
업계에선 납기 지연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이 언제 회복될지 알 수 없는 데다 물류비까지 올라 부품을 들여오는 데 드는 비용도 늘어나고 있어서다.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는 28일 ‘디스플레이 장비 부품 협의체’를 구성해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장비 부품기업 40여 곳 등과 장비 부품 시장을 종합 진단하고 발전 방안을 논의할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차원이다. 그동안은 장비 부품업계 관련 교류의 장이 없었다.

협회 관계자는 “글로벌 공급망 상황에 따라 국내 장비업계가 휘청이지 않도록 부품 경쟁력을 높이는 게 시급하다”며 “장비 부품 개발 관련 공동 기술개발 등을 추진하자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장비 부품 경쟁력이 높아지면 장비업체뿐 아니라 디스플레이 업체도 보다 안정적·효율적으로 사업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얘기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세계 디스플레이 장비 시장에서 한국 매출은 지난해 2억3300만달러(약 3019억6800만원)에 그쳤다. 2020년(23억3400만달러)과 비교하면 10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이다. 중국(105억2700만달러)과는 45배 넘게 차이 난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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