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호주 멜버른에서 만난 연금 전문 자산운용·컨설팅업체 머서(Mercer)의 데이비드 녹스 시니어 파트너(사진)는 “한국의 연금제도 평가는 D등급 수준”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녹스 파트너는 CFA협회와 함께 주요국의 연금제도를 평가하는 글로벌 연금지수(Mercer CFA Institute Global Pension Index) 산출을 총괄하는 연금 전문가다.
2021년 글로벌 연금지수에서 한국은 48.3점(D등급)을 받아 43개국 중 38위를 기록했다. 말레이시아(59.6점), 페루(55점), 인도네시아(50.4점) 등 개발도상국보다 낮은 수준이다. 한국이 받은 점수는 43개국 평균 점수인 61점에도 밑돌았다.
녹스 파트너는 “한국은 퇴직연금의 대부분이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묶여 있고 수익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이 퇴직연금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는 주식·부동산 등 성장형 자산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장의 등락이 있어도 결국은 투자상품이 높은 수익을 낸다는 얘기다.
급속한 고령화가 진행되는데도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높이는 제도가 미비하다는 점도 한국 퇴직연금 평가 때 마이너스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녹스 파트너는 “장기적으로는 성장형 자산의 수익률이 높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원리금 보장 상품에 돈이 많으면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좋은 퇴직연금은 은퇴 시점에 성장 자산 비중이 50~60%인 상품”이라며 “퇴직연금은 40~50년을 내다보고 투자하는 상품이기 때문에 장기적 안목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22일 만난 매튜 린덴 인더스트리슈퍼 부대표는 성장형 자산이 수익을 낸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증명됐다고 말했다. 그는 “포트폴리오만 균형 있게 구성하면 단기 변동성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했다.
린덴 부대표가 말하는 균형은 국내주식 25%, 해외주식 25%, 부동산·인프라 20%, 채권 및 원리금보장 상품 30%를 투자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같은 자산 구성은 호주 디폴트옵션 상품의 보편적 포트폴리오다.
그는 “주식시장에 영향을 받지 않는 자산도 상당 부분 넣어 변동성을 줄이는 게 투자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디폴트옵션이 성공하기 위한 조건으로 제도에 대한 신뢰를 꼽았다. 맡긴 자산이 수익으로 이어질 것이란 점을 국민에게 인식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멜버른=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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