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장 초유의 반발 사표…윤석열 대통령, 수리 보류

입력 2022-06-27 17:26   수정 2022-06-28 00:42

행정안전부가 이르면 다음달 경찰 담당 조직인 경찰국(가칭)을 신설해 총경 이상 경찰 고위직에 대한 인사·징계권을 적극 행사하기로 했다. 행안부 직속 경찰제도개선자문위원회(자문위)가 지난 21일 경찰 업무 조직 설치를 권고한 지 1주일 만에 속전속결로 경찰 견제책 실행에 나선 것이다.

행안부의 경찰 견제 방안에 반대 목소리를 내온 김창룡 경찰청장은 이에 반발해 결국 사의를 밝혔다. 행안부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으로 비대해진 경찰 권력을 통제·관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반면 경찰은 “경찰 조직의 근간을 흔드는 위헌적 조치”라고 맞서고 있다.
“공룡 경찰 고쳐나가야”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국민 브리핑에서 자문위 권고안에 대한 정부 입장을 설명하고, 행안부 내 경찰업무 조직의 신설 계획을 밝혔다. 이 장관은 이날 ‘공룡 경찰’이란 단어까지 직접 언급하며 경찰에 대한 지휘 통제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최근 강화된 경찰 권한으로 공룡 경찰에 대한 우려가 큰 게 사실”이라며 “행안부마저 경찰이 알아서 잘할 것이라고 기대하며 손 놓고 있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했다. 이어 “30년간 경찰 조직이 변하지 않은 이유는 지나치게 비대하고 권력과 가까웠기 때문”이라며 “윤석열 정부에서는 헌법 정신에 맞게 하나하나 고쳐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행안부는 자문위 권고안대로 경찰 업무 조직(경찰국) 설치와 경찰청장에 대한 지휘규칙을 제정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향후 토론회, 관계기관 협의를 거쳐 다음달 15일까지 최종안을 마련하고 관련 규정을 제·개정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다음달 행안부 내에 경찰국이 설치될 것으로 예상된다. 내무부(행안부의 전신) 치안본부가 1991년 내무부 외청인 경찰청으로 독립한 지 31년 만에 행안부 내 경찰 업무 조직이 생기는 것이다.
고위직 인사권으로 통제 강화
경찰국 신설은 사실상 행안부 장관의 경찰 인사권 강화와 맞물려 있다. 행안부는 경찰국을 통해 총경 이상 770여 명의 경찰 고위직에 대한 인사제청권을 제대로 하겠다는 구상이다. 지금까지 대통령 민정수석실과 경찰청장이 논의해 경찰 고위직 인사안을 짜면 행안부 장관은 형식적으로 제청하는 식이었다. 앞으로는 행안부 장관이 경찰국 지원을 받아 경찰청장이 추천한 인사안을 면밀히 검증할 수 있게 된다.

이 장관은 행안부의 인사권 행사로 경찰 수사의 중립성이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검찰 인사도 법무부 장관과 대통령이 하는데 정권 관계없이 다 수사하지 않냐”며 “경찰이라고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 오히려 대통령실과 경찰 사이에서만 인사가 이뤄지면 대통령이 자기 취향대로 움직일 사람을 앉히는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반박했다.
대통령실 “청장 사표 법대로 처리”
김 청장은 이날 이 장관이 브리핑을 하기 직전 열린 경찰청 국·관회의에서 사의를 밝혔다. 김 청장은 다음달 23일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그는 “현 시점에서 제가 사임하는 게 최선이라는 판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역사 속에서 우리 사회는 경찰의 중립성과 민주성 강화야말로 국민의 경찰로 나아가는 핵심적인 요인이라는 교훈을 얻었다”며 “권고안은 이런 경찰 제도의 근간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일단 김 청장의 사표 수리를 보류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김 청장이 정식으로 사표를 내면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며 “다만 윤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출국한 만큼 즉시 사표를 수리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3일 경찰청 치안감 인사 번복 사태가 벌어진 것에 대해 “국기문란”이라는 표현을 쓰며 경찰을 강하게 질책했다.

이날 행안부의 실행 계획 발표에 경찰 내부 반발도 극심해지고 있다. 경찰 직장협의회 소속 경찰관들이 이날 선언문을 내고 “정치적 중립의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는 행안부 경찰국 부활 추진을 즉각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전국 각지의 경찰 직장협의회도 행안부 경찰국 신설에 반대 성명을 내고 시위에 돌입했다.

이정호/구민기/장강호 기자 dolp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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