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우의 Fin토크] 2022년의 '충청은행 부활운동'

입력 2022-06-28 17:37   수정 2022-06-29 00:10

충청남도가 지난달 ‘충청권 지방은행 설립 100만인 서명운동’이라는 홈페이지를 열었다. 한 달 새 7000명 가까이 동참했다. 충청권에 새 은행을 만들자는 주장은 10년 전 반짝 나왔다가 최근 대선과 지방선거를 계기로 다시 공론화가 시도되고 있다. 대전, 세종, 충남, 충북은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공동 추진 협약을 맺고 연구용역에 착수했다. 내년 금융당국에 인가 신청서를 낸다는 목표다. 지방은행이 없는 탓에 자본이 충청권 밖으로 더 빠져나가고, 지역 맞춤형 금융 서비스도 부족하다는 게 이들 지자체의 문제의식이다. 새 은행이 3조5000억원의 생산, 2조원의 부가가치, 2000명의 고용 유발 효과를 가져올 것이란 청사진도 내놨다.

우리나라 은행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게 ‘조상제한서’다. 한때 은행업계를 주름잡았던 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은행을 가리킨다. 아직 건재한 곳은 SC제일은행뿐이다. 나머지 은행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 20년이 넘었으니 Z세대쯤 되면 이름 자체가 낯설 터다. 외환위기 파도에 휩쓸려 잊혀진 금융회사 중엔 지방은행도 많다. 1998년 충청은행(사진)이 하나은행, 강원은행이 조흥은행에 넘어갔고 1999년 충북은행이 조흥은행, 경기은행이 한미은행으로 흡수됐다. 박정희 정권 ‘1도 1행’ 정책의 산물인 지방은행은 이제 부산·대구·경남·광주·전북·제주은행까지 여섯 곳 남았다.
핀테크 시대, 설 자리 좁은 지방銀
그런데 어렵게 살아남은 지방은행들은 갈수록 힘겨워 보인다. 금융연구원 보고서를 보면 세계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지방은행의 수익성(ROE·ROA)과 건전성(고정이하 여신비율)은 시중은행을 앞섰다. 홈그라운드를 꽉 잡은 ‘관계형 금융’의 힘이었다. 지난 몇 년 새 세가 많이 기울었다. 근본적인 원인은 영호남 가릴 것 없이 지역경제가 침체에 빠진 탓이다. ‘디지털 전환’이라는 거대한 변화에 대응하기에 자본력도 인력도 버겁다. 가장 큰 지방은행인 부산은행의 총자산은 국민은행의 6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지역 내 대출이 주된 수익원이다 보니 비이자수익과 해외 사업에는 서툴다.

금융연구원은 지방은행을 떠받친 또 다른 축이던 ‘애향심’도 옅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 지방은행은 충성도 높은 지역민들로부터 낮은 금리로 많은 예금을 유치해 경쟁력을 확보했다. 하지만 2014년 이후 지방은행 예금 이자율은 시중은행보다 높아졌다. 이런 와중에 네이버 카카오 토스 같은 ‘신종 금융사’에도 치이고 있다. 테헤란로와 판교로 쏠리는 A급 인력을 지방에서 붙잡긴 쉽지 않다.

금융위원회 자문기구인 금융산업 경쟁도 평가위원회의 2018년 ‘은행업 경쟁도 평가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에 어떤 은행이 새로 생겨야 할지 소비자에게 물었더니 인터넷전문은행이 40.8%로 가장 많았다. ‘필요 없다’도 25.8%에 달했고 지방은행은 3.7%였다. 위원들도 “시중은행이나 지방은행보다 인터넷은행의 추가 인가가 적절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균형발전'만으론 설득력 없어
금융권 한쪽에선 “디지털 시대에 지방은행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지방은행은 필요하다”고 말하는 전문가가 여전히 많다. 전국구 은행이 대체할 수 없는 고유의 역할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의 ‘충청은행 부활운동’이 지지를 얻으려면 전제 조건이 있다. 핀테크 시대의 지방은행으로서 무엇을 차별화해 어디서 돈을 벌지 고민한 흔적을 더 보여줘야 한다.

충청은행에 투자 의향을 밝힌 기업은 아직 불분명하다. 은행법상 지방은행의 최소 자본금은 250억원이지만, 인터넷은행들도 자본금을 1조~2조원씩 채워 넣고도 갈 길이 구만리인 게 현실이다. 공항 짓는다고 도시가 부흥하지 않듯 지방은행을 만든다고 지역경제가 자동으로 살아나지는 않는다. ‘560만 충청인의 염원’이라는 지자체장들의 구호나 “충청에 지방은행이 없는 것은 심각한 일”이란 여야 지도부의 맞장구에서 동력을 찾으려 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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