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대학 재정 해법, 시장과 자율이 답이다

입력 2022-06-28 17:26   수정 2022-06-29 00:10

“대학 총장들이 일개 교육부 과장의 한마디에 벌벌 떠는 게 현실입니다. 잘못 찍혔다가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대학평가)에서 떨어지기라도 하면 큰일 아닙니까.”

지난 23일 대구에서 열린 전국 대학 총장 세미나. 이곳에서 만난 대학 총장들은 한목소리로 교육부의 대학평가를 비판했다. 대학평가는 3년마다 교육부가 대학을 평가해 기준을 통과한 학교에만 재정을 지원하는 제도다. 일종의 ‘줄 세우기’다. 작년에는 인하대 성신여대 등 수도권 유명 대학까지 탈락해 총장과 학생들이 교육부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등 큰 파장이 일었다.

총장들이 대학평가에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등록금이 14년째 동결된 상황에서 장학금 등 정부 지원이 끊기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전국 사립대 중 67%가 운영 적자를 기록했다. 10년 전 31%에서 두 배 이상 급증한 수치다. 서울의 한 사립대 총장은 “전 교직원을 총동원해 3년 내내 대학평가를 준비한다”고 토로했다.

대학들은 ‘교육판 배급제’로 허리가 휘지만 참고 따를 수밖에 없다. 정시 수시 비율부터 교원 선발, 대학 운영의 세부적인 것까지 규제가 없는 곳을 찾기 힘들다. 그 결과 국내 대학들의 경쟁력은 나날이 떨어지고 있다. 세계 유명 대학평가에서 중국 일본은 물론 싱가포르와 홍콩에도 밀리는 게 한국 대학의 현실이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주문한 반도체 전문인력 양성안도 대학의 재정 문제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첨단산업 전공을 개설하려면 기업에서 전문가를 데려와야 하는데 현재 교수 연봉으로는 이를 맞출 수 없다는 게 총장들의 하소연이다.

이 같은 난맥상을 해결하기 위해선 대학을 시장과 자율에 맡기는 게 유일한 해법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비싼 등록금을 받고도 교육의 질을 높이지 못하면 학생과 학부모들이 알아서 선택을 할 것이란 얘기다. 시장경쟁에서 탈락한 대학들이 도태하면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구조조정도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물론 국가 전체의 이익과 사회 안정을 위해 정부 역할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기회의 균등’을 위해 저소득층의 고등교육도 보장해야 한다. 이는 인종, 소득 등을 배려하는 미국 대학처럼 소수자, 저소득층을 위한 장치를 마련하고 국가 장학금을 늘려서 해결하면 될 일이다. 지금처럼 대학에 뿌려주는 예산이면 이를 감당하고도 남는다.

윤 대통령이 교육부에 주문한 발상의 전환은 이런 방향일 것이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세미나에서 “재정 지원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규제 철폐에서 찾아야 한다.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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