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잉 에어리어에 들어선 순간 “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먼저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광(風光). 파란색 하늘과 하얀 구름 사이로 새어 나온 햇빛이 페어웨이 한가운데를 ‘스포트라이트’처럼 비췄다. 넋 놓고 바라보게 하는 이런 풍광을 앞에 두고 똑바로 드라이버 샷을 날릴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싶었다.
정신을 부여잡자, 그제야 전장이 눈에 들어왔다. 화이트 티 기준 380m. 파4홀인데 웬만한 장타자가 아니면 ‘투온’이 쉽지 않은 길이다. 강원 홍천의 세이지우드CC홍천(27홀) 시그니처 홀인 드림코스 3번홀과 처음 마주한 순간은 이랬다.
드림코스 3번홀은 그 정수다. 이 홀에는 몇 가지 감상 포인트가 있다. 첫 번째는 길고 넓은 페어웨이를 가득 메운 빽빽한 ‘켄터키 블루’ 잔디다. 최대 전장 430m에 너비가 최대 80m나 된다. 한국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넓고 긴’ 홀이다. 페어웨이 왼쪽에는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처럼 하늘을 담는 ‘도화지’ 역할을 하는 물웅덩이가 있다. 이 모든 게 어우러져 골퍼들의 시선을 빼앗는다.
이두현 세이지우드CC홍천 지배인은 “드림코스 3번홀은 비전코스 2번홀과 함께 박 회장이 가장 좋아하는 홀”이라며 “박 회장이 이 홀에 대해 ‘땅은 돈 주고 샀지만, 공기와 하늘은 덤으로 얻었다’고 말한 기억이 난다”고 했다.
이 홀에서 보기 이상의 성적을 내려면 일단 드라이버 샷을 멀리 보내야 한다. 티잉 에어리어에서 홀까지 거리는 △블랙 티 430m △블루 티 410m △화이트 티 380m △레이디 티 300m다. 이 지배인은 “왼쪽 물웅덩이를 넘기려면 화이트 티에서 캐리로 180m 이상 쳐야 한다”며 “넘길 자신이 없다면 우측으로 난 샛길로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캐디는 “30대 한국 남자 대부분이 왼쪽을 겨냥한다”고 했다. 이 지배인은 “싱글 골퍼인 박 회장도 컨디션이 나쁠 때는 돌아서 간다”며 오른쪽 방향도 고려해보라고 했다.
캐디 말을 따랐다. 살짝 슬라이스성으로 날아간 공은 웅덩이 위를 한참 날더니 턱에 맞고 튀었다. 공은 다행히 살았다. 레이업 후 3번 우드 샷. 잘 맞았지만 그린에 다다르지는 못했다. 어프로치샷은 홀에서 5m나 떨어진 곳에서 멈췄고, 그린 스피드(3.1m·스팀프미터 기준)를 잘못 읽어 퍼트를 세 번이나 했다. 트리플 보기. 캐디는 “잘 치는 골퍼들도 이 홀에선 보통 보기 정도 한다”며 위로했다.
연간 보수비용은 약 40억원. 일반 골프장의 2배에 가까운 금액이다. ‘1등급 잔디’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다. 이 지배인은 “잔디 품질과 조경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데 가장 큰 공을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2013년 이 골프장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의 이름은 블루마운틴CC였다. 지난해 세이지우드CC홍천으로 바뀌었다.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의 별명인 ‘오마하의 현인(Sage of Omaha)’에서 딴 ‘세이지’와 ‘숲에 있는 집’을 뜻하는 ‘우드’를 합성했다. 현인들이 모이는 숲속의 별장으로 이 골프장을 키우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세이지우드CC홍천은 누구나 칠 수 있는 퍼블릭 골프장이다. 하지만 잔디 상태나 운영 시스템, 그린피(평일 최고 27만원, 주말 최고 37만원)로 따지면 최고급 회원제 골프장을 능가한다. 티 오프 간격은 주중 9분, 주말 8분. 27홀(드림·비전·챌린지)인데도 하루 최대 90팀만 받는다. 그것도 해가 길고, 잔디가 잘 자라는 5~10월 얘기다. 다른 기간에는 딱 60팀만 받는다.
홍천=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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