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연구의 핵심은 두 현상 사이의 ‘인과관계’ 검증이다. 위 결과가 과학적 사실이 되려면 수면의 양이 치매 발생을 좌우하는지 아니면 두 현상이 우연히 함께 관찰됐는지를 밝혀내야 한다. 즉 까마귀 날자 우연히 배 떨어진 것인지, 또는 실제로 까마귀가 가지를 차고 날아가는 충격 때문에 배가 떨어진 것인지를 규명하는 것이 과학 연구다.
과학 탐구과정에서 연구자는 실험과 관찰로 얻은 데이터로부터 일반 원리를 도출해내는 귀납법과 검증된 원리로부터 논리를 전개해 새로운 원리를 이끌어내는 연역법의 상호 작용을 거치며 진실에 다가간다. 귀납법으로 내리는 결론의 신뢰도는 관찰의 완벽성에 달렸다. 그러나 대다수 과학 실험에서는 관찰된 데이터의 양이 부족하다. 빈약한 데이터에 근거해 가장 그럴듯한(틀릴 확률이 낮은) 결론을 내려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이 맞는지 새로운 실험으로 테스트한다. 철학에서는 이를 귀추법(歸推法·Abductive Reasoning)이라 부른다. 이는 보편적인 과학 연구법일 뿐 아니라 의사가 질병을 진단하거나 재판관이 판결을 내리는 방법이기도 하다. 간혹 오진과 오판이 불가피한 이유다.
귀추법은 특히 생명과학 연구에 널리 쓰인다. 분야 특성상 검증된 원리가 턱없이 부족하고, 관찰을 무한정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제한된 데이터로부터 결론을 내리려다 보니 통계학적 분석 방법이 필수 역할을 한다. 즉, 결론의 옳고 그름은 통계적 계산으로 판단될 뿐이다. 일반적으로 틀릴 확률이 1% 이하인 결론을 일단 옳은 것으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이 결론이 확고부동한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관찰을 더욱 많이, 넓게, 다양한 각도에서 수행했을 때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과학계 최대의 금기는 의도적인 데이터 조작이다. 그런데 과학계에서는 의도건 실수건 오류가 생기면 대개 특유의 자정 기능에 의해 교정된다. 논문이 발표되려면 동료 과학자들의 심사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심사 과정에서 걸러내지 못한 오류가 논문 발표 후 과학자들의 검증 과정에서 드러나기도 한다. 17년 전 배아줄기세포 연구 데이터의 진실성 문제로 과학계를 넘어 전 사회가 홍역을 겪은 경우가 그 예다.
세상에 인과관계에 의지하지 않고 생겨나는 것이 없음은 불교의 기본 가르침이기도 하다. 과학적 사고방식이 상식이 되는 성숙한 사회를 고대한다. 배가 떨어졌다고 무작정 까마귀부터 탓하고 보는 태도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세상 말이다.
신희섭 IBS 명예연구위원·에스엘바이젠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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