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번 톤' 선명한 차이콥스키 협주곡

입력 2022-06-30 16:31   수정 2022-07-01 02:30

‘밴 클라이번’이란 이름이 TV에, 모니터에, 휴대폰 화면에 떠다녔다. 콩쿠르 이름의 주인공인 미국 피아니스트 밴 클라이번(본명 하비 라반 ‘밴’ 클라이번 주니어)은 1934년 7월 12일 루이지애나의 쉬레브포트에서 태어나 2013년 세상을 떠났다. 미국과 소련 간 냉전이 한창이던 1958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1회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머쥔 미국인이다.

17세에 줄리아드 음대에 입학한 반 클라이번은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러시아 악파의 계승자인 로지나 레빈 교수에게 배웠다. 그녀의 지도 덕에 러시아 악파의 전통에 힘과 기술을 접목한 고성능 피아니스트로 성장한다.

러시아 악파의 미덕을 발휘하려면 일단 하드웨어가 충족돼야 한다. 러시아 피아니스트들은 대체로 손이 크거나 몸집이 크거나 둘 다 큰 사람들이 연주를 했다. 들어보면 스케일이 크다. 차이콥스키, 스크랴빈, 라흐마니노프 모두 양손의 두툼한 화음과 음정의 비약이 눈부시다. 관현악적인 피아노에 러시아 특유의 호화로운 울림이 덧붙여진다.

명쾌한 색채감, 풍부한 음량, 폭 넓은 화성의 밸런스를 요하는 러시아 음악의 해석을 위해서는 쌓아올린 화성, 옥타브의 연속을 장악할 크고 힘 센 손이 필요하다.

거구의 밴 클라이번은 피아노 앞에 앉으면 풀 사이즈 그랜드 피아노가 작게 느껴졌다. 손을 뻗치면 한 뼘이 33㎝. 1옥타브 반을 넉넉하게 짚었다. 밴 클라이번은 피아노의 울림에 여유가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이 젊은이는 다른 사람들 소리보다 두 배 더 큰 소리를 낸다.” 밴 클라이번의 연주를 듣고 호로비츠가 한 말이다.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소련 청중들은 밴 클라이번에게 열광했다. 그가 가는 곳마다 꽃과 선물, 기념품이 가득 쌓였다.

밴 클라이번에 이어 2위에 올랐던 피아니스트 레프 블라센코조차 “밴 클라이번은 우리보다 더 러시안적이었다. 그의 연주는 구름을 뚫고 비추는 햇빛 같았다”고 말했다. 냉전 시대에 막 시작한 콩쿠르의 1위를 적국 후보에게 넘겨주는 것은 아무리 공정을 강조했더라고 마음에 걸렸을 게 당연하다.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는 “그가 최고인가?”라고 묻고 “그렇다면 그에게 상을 주게”하고 쿨하게 ‘허락’했다 한다.

차이콥스키 협주곡 1번은 콩쿠르에서 모스크바 필하모닉을 지휘했던 키릴 콘드라신을 모셔와 카네기홀에서 녹음한 음반이다.‘클라이번 톤’이라고 불리는 선명한 음색이 인상적이다. 독특하면서 밝다. 특히 고음부가 빛난다. 선명하고 그늘지지 않으면서 개방적인 소리는 다른 어떤 녹음보다도 3악장을 해피엔딩으로 만든다.

금메달을 걸고 뉴욕에 돌아온 밴 클라이번을 시민들은 카 퍼레이드로 환영했다. 이때의 장면이 1974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공동 2위에 오른 정명훈의 귀국 카퍼레이드에 영향을 줬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세 명의 러시아 피아니스트 안드레이 가브릴로프(1위), 스타니슬라프 이골린스키(공동 2위), 유리 에고로프(3위) 사이에서 빛난 정명훈의 입상은 대단한 사건이었다.

류태형 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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