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7월 06일 08:26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올 여름 기업공개(IPO) 시장이 달아오르고 있다. 오는 7일 AI 암진단 소프트웨어 기업 루닛의 수요예측을 시작으로 기업가치가 5000억원 이상인 9개 기업이 잇달아 공모에 나선다. 지난 5월 SK쉴더스, 원스토어, 태림페이퍼 등이 한꺼번에 상장을 철회하면서 IPO 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드는 듯 했지만, 두 달만에 재개되는 모양새다. 다만 국내 증시가 1990년 이래 최대 낙폭을 기록하는 등 투자 심리가 악화된 상황이어서 공모 자금 조달이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한국경제신문 자본시장 전문매체 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올 하반기 IPO 예정기업의 총 공모금액은 4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가치가 10조원 대로 추정되는 현대오일뱅크와 인터넷은행 케이뱅크, 헬스앤뷰티스토어 CJ올리브영 등이 상장으로 최소 5000억원 이상의 자금을 조달할 계획이다.
이달엔는 헬스케어 유니콘 기업들이 IPO 시장의 포문을 연다. 지난 29일 약물설계전문기업 보로노이가 상장 후 나흘 만에 첫 상한가를 기록하면서 기술력을 보유한 바이오 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이다. AI 영상분석 기술로 암을 진단하는 루닛은 오는 7~8일 기관 투자가를 대상으로 수요예측을 실시한 후 12~13일 일반 청약을 받는다. 국내 헬스케어기업 중 최초로 기술평가 기관 두 곳에서 모두 AA등급을 받은 회사다. 희망 공모가격은 4만4000~4만9000원이다. 121만4300주를 공모해 534억~595억원을 조달한다. 상장 후 시가총액은 5400억~6000억원이다. 루닛은 한때 장외 시장에서 시가총액이 1조원에 달했던 회사다. 최근 시총은 6300억원 대에 형성돼있다. 상장시 AI 의료기기 기업의 대장주가 될 전망이다.
신약개발사 에이프릴바이오도 오는 13~14일 수요예측을 하고 19~20일 일반청약을 받는다. 이 회사는 지난 3월 상장예비심사에서 탈락했다가 재심사에서 통과한 첫 사례다. 희망 공모가격은 2만~2만3000원으로 제시했다. 162만 주의 신주를 모집해 324억~373억원을 조달할 예정이다. 공모가 기준 시가총액은 2170억~2500억원이다. 이 회사도 기업가치가 최소 3000억원 이상으로 예상됐으나 바이오 주가가 급락하면서 공모가를 낮췄다.
폐배터리 재활용 업체 성일하이텍와 발전플랜트 전문회사 수산인더스트리 등 시가총액 5000억원 대도 이달 공모에 나선다. 성일하이텍은 2차전지에서 주요 금속을 추출해 재활용하는 폐배터리 전문기업이다. 적자기업이 활용하는 테슬라 특례 상장(이익미실현 특례 상장)을 선택했지만 지난해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지난해 개별기준 영업이익 137억원을 달성한데 이어 올 1분기에도 79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며 흑자를 냈다. 공모주식 수는 267만주로 주당 공모가 희망 범위는 4만700~4만7500원이다. 이번 상장으로 1086억~1268억원을 조달한다. 주식매수선택권을 고려한 상장 후 시가총액은 5000억~5836억원 수준이다. 이 회사는 국내 폐배터리 재활용 관련 기업 중 기술력과 생산능력 등에서 가장 앞선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어 공모주 투자자들의 관심이 뜨거울 전망이다.
이어 발전 플랜트 종합 정비솔루션 기업 수산인더스트리가 올해 두번째로 유가증권시장 상장에 나선다. 지난 1월 LG에너지솔루션 이후 약 6개월 만이다. 오는 14일~15일 기관 수요예측을 실시해 공모가를 확정한 후 같은 달 20일~21일 일반 청약을 진행한다. 공모 주식 수는 571만5000주로 신주모집 428만6000주(75%), 구주매출 142만9000주(25%)로 구성됐다. 공모가 희망 가격 범위는 3만5000원~4만3100원으로 제시했다. 공모가 기준 예상 시가총액은 5000억~6157억원이다. 이번 IPO 과정에서 최대 주주인 정석현 수산그룹 회장(지분율 85%)과 부인인 안정재씨(15%)가 각각 71만4500주를 구주 매출하기로 결정했다. 공모가 기준 500억~616억원 규모다. 최대 주주와 특수관계인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어 유가증권시장 상장 규정 상 주식 분산 요건(일반주주 소유 비율 25% 이상 등)을 충족시키기 위해 불가피하게 구주매출을 하게 됐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기관 투자자들이 구주매출 비중이 큰 기업을 꺼리는 데다 올 초 발전설비기업 대명에너지가 한 차례 수요예측에서 고배를 마셨다는 점에서 흥행 성적이 저조할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다음 달에는 모빌리티 플랫폼 쏘카, 2차전지 분리막 제조사 WCP, 케이뱅크, 현대오일뱅크 등 기업가치가 조(兆) 단위인 대어들도 줄줄이 대기 중이다. 쏘카는 시가총액 1조원 이상인 기업에게 적용되는 유니콘 특례로 유가증권시장 입성에 도전한다. 8월 1~2일 수요예측 후 8~9일 일반청약을 진행할 예정이다. 총 공모주식 수는 455만주로 주당 공모 희망가 범위는 3만4000~4만5000원이다. 시가총액은 1조2060억~1조5943억이다. 최대 2048억원을 조달한다.
2011년 설립된 쏘카는 국내 카셰어링 시장 1위 업체로 국내 시장 점유율이 70%에 이른다. 국내 4200곳 이상 쏘카존에서 1만8000대가 넘는 차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차량 대여 등 카셰어링 사업으로 매출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2890억원으로 전년 대비 31% 증가했다. 그러나 영업손실은 210억원으로 전년(147억원)보다 43% 증가했다.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손실은 210억원, 올해 1분기 영업손실은 85억원이었다. 회사 측은 올해 흑자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쏘카와 비슷한 시기 2차전지 분리막업체 WCP도 공모에 나선다. 시가총액은 3조원 대로 예상된다. 상장 예비심사 청구당시 공모예정주식수는 900만주, 희망공모가격은 8만8300~11만8000원 대로 제시했으나, 최종 증권신고서 제출시 변동될 가능성이 있다. 회사 측은 이번 상장으로 8000억~1조원을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이 회사는 2016년 설립된 2차전지 분리막 개발사로 삼성SDI와 LG에너지솔루션 등에 분리막을 공급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1854억원, 영업이익은 404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65%, 316% 증가했다. 2차전지 시장이 급격히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만큼 시장의 관심이 크다. 이 회사는 최근 헝가리에 7억 유로(약 9530억원)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2025년까지 연간 12억㎡ 생산능력을 갖춘 2차전지 분리막 생산·코팅라인 설비를 구축하고 유럽 양산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이밖에 현대오일뱅크도 오는 10월 코스피 상장을 목표로 IPO를 추진 중이다. 2012년과 2019년 두 차례 상장을 추진했다가 철회했고 이번이 세번째 도전이다. 지난해부터 유가가 고공행진하면서 10조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 20조6065억원으로 전년 대비 50.5% 증가했다. 2020년 영업적자는 5933억원이었으니 지난해는 1조1424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경쟁사인 S-OIL의 시가총액은 29일 종가 기준 12조1589억원이다. 다만 S-OIL의 지난해 영업이익이 2조3064억원으로 현대오일뱅크보다 약 두 배가량 많다는 점에서 10조원 이상으로 평가받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번 상장으로 현대오일뱅크의 2대 주주인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도 보유 지분의 일부를 매각해 투자금을 회수할 전망이다. 아람코는 2019년 1조3749억원을 현대오일뱅크에 투자해 17%의 지분을 확보했다. 당시 현대오일뱅크의 기업가치는 8조원으로 평가받았다. 최대 주주는 HD현대(지분율 73.85%)다.
국내 1호 인터넷 전문은행 케이뱅크도 코스피 시장 상장 예비심사 신청서를 제출하고 연내 상장을 본격화했다. 이르면 9월 승인받은 후 11월 이전 상장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증권가는 케이뱅크의 기업가치를 최소 6조원에서 최대 8조원으로 보고 있다. 최근 카카오뱅크의 시가총액이 13조원 대로 주저앉으면서 상장시 주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케이뱅크는 2017년 4월 출범한 국내 1호 인터넷 전문은행이다. 올해 5월말 기준 총 772만 명의 고객을 확보하고 있으며 수신 11조 3300억 원, 여신 8조 4900억 원을 보유하고 있다. BC카드가 지분 34%를 보유한 최대 주주며 우리은행(12.8%), 베인캐피탈(8.2%), MBK파트너스(8.2%), NH투자증권(5.5%) 등도 주요 주주다.
IB업계 관계자는 "코스피 지수가 연일 연중 최저점을 경신하는 상황에서 8월부터 수천억원 규모의 공모가 이어진다는 점은 시장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증시가 더 하락한다면 일부 기업은 수요예측에 실패해 상장을 철회하거나 공모가를 낮춰야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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