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영국 런던 소호거리에서 만난 직장인 저스틴 메이(25)는 “3년 전 기업에 취직한 뒤 연평균 두 자릿수에 가까운 퇴직연금 수익률을 올렸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큰돈은 아니지만 노후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퇴직연금을 투자하고 있다”고 했다.
메이의 퇴직연금 계좌 수익률은 영국에선 특이한 사례가 아니다. 영국의 퇴직연금 운용 공공기관인 ‘NEST(National Employment Savings Trust·국가퇴직연금신탁)’ 덕분이다. 영국 근로자 1110만 명이 가입한 NEST가 운용하는 펀드인 RDF(retirement date fund)는 RDF2040 기준 지난 10년간 연평균 수익률이 9.9%에 달했다. 같은 기간 한국 퇴직연금 연평균 수익률(2.39%)의 4배가 넘는다. 양국 근로자가 30년 동안 월평균 40만원을 적립했다면 영국은 8억9000만원, 한국은 2억1000만원이 쌓이는 셈이다. RDF는 한국에서 퇴직연금의 유망 운용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는 타깃데이트펀드(TDF)와 비슷한 상품이다.
영국 정부는 NEST 설립 후 사업주와 근로자의 퇴직연금 가입을 독려했다. 가입하지 않겠다는 명시적 의사를 밝히지 않는 이상 자동적으로 퇴직연금에 가입하도록 했다. 운용 수수료를 낮추고 퇴직연금 기여금도 지원했다. 그 결과 2012년 46.5%에 불과하던 퇴직연금 근로자 가입률은 2021년 79.4%까지 올라갔다.
2015년 4억2000만파운드(약 6647억원)였던 NEST의 운용자산은 올해 1분기 241억파운드(약 37조9558억원)로 커졌다. 2015년 200만 명에 불과하던 가입자는 올 1분기 1110만 명으로 늘어났다.
영국 퇴직연금 가입자 약 2300만 명 중 절반이 NEST를 이용하고 있다. 런던에 사는 무스타크 알리는 “운용수익률이 좋아 직장인들이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정부 조사에 따르면 NEST 가입자의 71%가 “수익률 등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NEST RDF는 30년을 기준으로 크게 4단계로 운용된다. 첫 번째는 ‘기반 형성 단계’다. 가입 후 약 5년 동안 기여금을 충분히 쌓는 시기로 물가상승률 이상의 수익률을 목표로 한다. 두 번째는 ‘성장 단계’다. 약 15년간 ‘물가상승률+3%포인트 이상’의 수익률 달성을 추구한다. 주식 투자 비중이 가장 높은 시기다. 세 번째 ‘안정화 단계’에서는 10년간 채권 비중을 늘려 변동성을 줄인다. 마지막 ‘은퇴 후 단계’에서는 투자자가 퇴직연금을 한꺼번에 인출하거나 사망 시까지 일정액을 주기적으로 받는 것 중에 선택할 수 있다.
런던은 세계 금융 중심지 가운데 하나지만 RDF 적립금 중 70% 이상이 해외에 투자된다. 주식·채권·부동산·원자재 등 투자 분야도 다양하다.
NEST는 투자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해 투자자 신뢰를 높인다. 분기·연간 보고서를 통해 주식·채권·대체자산 투자 비중, 투자 종목 등을 자세히 공개한다. 올해 1분기 투자 비중이 가장 높았던 종목은 미국 애플(펀드의 2.4%)이었다.
NEST의 연간 총 수수료는 0.5%로 낮다. 영국은 NEST 외에도 모든 퇴직연금 펀드의 운용수수료를 0.75%로 제한하고 있다.
런던=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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