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라늄 등 핵연료와 불화리튬·지르코늄, 염화나트륨 등 냉각재가 한곳에 용암처럼 섞여 있는 용융염원자로(MSR)는 ‘인류가 고안한 가장 독특한 원자로’로 꼽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청정 에너지원으로 연일 강조하고 있는 소형모듈원자로(SMR)의 일종인 MSR은 중대사고 위험이 극히 낮고, 그린수소 생산까지 가능하다. 미국과 캐나다, 영국, 프랑스 등이 2010년을 전후해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29~2030년께 상용화가 예상된다. 글로벌 탄소배출 규제가 심해지고 있는 조선업계에서도 MSR을 차세대 동력원으로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서슬이 퍼렇던 지난 5년간 손도 못 대다 지난해 들어서야 일부 기초 연구가 시작됐다. 김성중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학생들이 확연히 감소한 것은 물론 기존에 남아 있는 인력도 의욕을 잃었다”며 “SMR 기술을 한창 연구해야 할 시기에 골든타임을 놓친 것 같다”고 우려했다.
MSR과 같은 미래 기술을 세상에 내놓는 데 있어 장기적 대학 연구의 중요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최근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한 뉴스케일파워다. 뉴스케일은 미국 연구중심 대학인 오리건주립대가 개발한 원천기술을 이전받아 비경수로형 SMR 상용화를 목전에 뒀다. 미국 에너지부(DOE)가 상용화를 전폭 지원했으며 그동안 약 2조원의 민·관 자금이 들어갔다. 두산에너빌리티가 시공 기술을 토대로 뉴스케일과 협력 관계를 맺고 있지만, 부가가치가 큰 설계 기술은 어디까지나 미국이 보유하고 있다.
한국 대학은 지난 5년간 SMR 연구에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거칠게 밀어붙이면서 미래기술에 투자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석·박사 통합과정에 재학 중인 구자현 씨는 “대학은 SMR같이 상용화가 이뤄지지 않은 미래 기술에 전념하는 게 맞다”며 “원전 연구자는 시대착오적인 집단이란 낙인이 찍혀 연구에 집중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파이로-SFR은 1997년부터 한·미 연구진이 개발해왔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해인 2017년 말 돌연 ‘재검토’ 결정이 내려지면서 먼 길을 돌아야 했다. 지난해 말 가까스로 한·미 당국의 파이로-SFR 연구를 집대성한 연구보고서가 나오면서 기술적 타당성과 핵 비확산성 등이 재차 검증됐다. 그러나 ‘탈원전’을 적극 지지한 임혜숙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재임 시 소집된 외부 검토위원회는 보고서에 대해 “사회적 수용성을 고려할 때 경제성이 불확실하다”는 모호한 해석을 내렸다.
원자력연구원 선진핵주기시스템연구부에서 석·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윤선광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연구원은 “파이로-SFR 연구가 한창 진행되는 와중에 예산이 삭감되고 연구 역량이 분산되면서 엄청난 비효율이 생겼다”며 “소수 비전문가가 국가 에너지 정책을 왜곡하는 일은 다시 발생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황폐화된 대학 원전 생태계를 되살리기 위해선 기업과 연계해 실험용 원자로 공급 등 학부 지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동억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원자력학과장은 “SMR 시장이 어마어마하게 성장할 텐데, 이런 기술의 기초를 다질 학부생을 대상으로 한 정책이 매우 부족해 보인다”며 “바닥이 무너지면 결국 모두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이해성/김진원 기자 i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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