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형은 그 자체로 완벽한 도형이다. 사각형은 정사각형도 마름모도 될 수 있지만, 삼각형은 길이가 설정되면 모양이 바뀌지 않는다. 종교에서, 정치에서, 예술에서 삼각형이 자주 차용되는 이유다. 삼위일체도 그중 하나다. 종교적 색채를 빼고 나면, 삼위일체는 세 가지 것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통합되는 일로 정의된다. 디지털 경제 시대, 이는 정부와 기업, 노조에도 적용할 수 있다.
싱가포르의 경제전환
싱가포르는 한국, 홍콩, 타이완과 더불어 아시아의 호랑이 중 하나다. 오늘날 싱가포르는 국내총생산(GDP)에서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70%가량이지만, 경제 성장의 초석은 1960년대 노동집약적 제조업이었다. 1960년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10%였으나 이후 1970년대 말에는 25%로 커졌고, GDP는 연간 6% 이상 증가했다. 값싼 제조업 중심지 기능을 수행하며 일본을 비롯한 많은 국가가 싱가포르로 모여들게 했고, 그 덕에 1965년 500달러에 불과하던 1인당 GDP는 1990년 1만3000달러로 급등했다. 더욱 놀라운 점은 2015년에는 1인당 GDP가 유럽의 경제 강국인 독일보다, 그리고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미국보다 높아졌다는 점이다. 이는 1980년대 이미 경제구조를 서비스와 지식 중심으로 전환한 결과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새로운 개발도상국이 추격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가치사슬 상단으로 옮겨 간 것이다. 문제는 노동자들이었다. 제조기술에 익숙한 노동자들을 고부가가치의 서비스업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를 위해 싱가포르 정부가 아동과 성인 모두를 위한 새로운 유형의 교육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전자 분야를 비롯한 고숙련 산업에 중점을 둔 훈련센터를 설립하고, 대학에서는 수준 높은 인력을 양성하는 동시에 정규 교육 시스템의 혜택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기술 훈련을 제공했다. 정부와 기업 그리고 노조
싱가포르의 이상적인 경제전환은 정부와 기업 그리고 노조가 같은 목적으로 달려갔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경제 발전 초창기인 1965년부터 세 주체는 노동시장과 산업정책 결정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덴마크 사례도 비슷하다. 덴마크의 금속노조는 점점 더 많은 로봇이 도입되는 상황을 그 누구보다 반긴다. 일반적인 노조와는 다른 태도다. 19세기의 러다이트 운동이나 오늘날 우버에 대항한 거리시위를 보면 언뜻 이해하기 힘든 움직임이다. 하지만 덴마크 금속노조는 낡은 기술로 부자가 된 나라는 없다고 단언한다. 오히려 신기술을 하루라도 먼저 받아들이고 재교육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낙관적인 태도는 일반 노동자 사이에도 보편적이다. 노동자들은 회사를 선택할 때 재교육 가능성을 기준으로 삼는다. 재교육 덕분에 실직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노조는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의 상황을 점검하고, 새로운 일자리가 필요한지, 재교육이 필요한지 판단해 다른 직장을 찾아준다. 기업과 노동자 모두 재훈련과 재교육에 대해 열려 있는 덕분에 노동시장의 역동성은 계속 더욱 강해진다.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직전 덴마크의 실업률이 3.7%였으며, 특히 금속노조는 그보다 낮은 2%였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노동시장의 삼위일체
더 이상 노동시장을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장으로 활용하는 일은 효율적이지 않다. 신기술과 로봇의 도입이 노동자 자신에게 유리한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비전을 제시하고, 끊임없는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세상의 발전과 개인의 성장이 같은 방향에 놓일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재교육을 통해 내 삶의 질이 높아지고, 나의 발전이 기업과 국가 발전의 기반이 된다면 신기술을 마다할 리 없다. 디지털 경제 시대, 변화된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 노조가 같은 방향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 중심에는 정부가 있다. 이는 정부와 기업이 노동자들의 지속적인 재교육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노조는 강해진 힘을 바탕으로 기업과 정부에 협력하며, 노동자 개개인이 자신과 국가가 직면한 미래 경제의 도전 과제에 유연한 자세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노동시장을 개혁할 것이 아니라 노동시장 스스로 바뀔 수 있도록 유인을 설계해야 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이런 면에서 오늘날 필요한 것은 큰 정부가 아니라 기업과 노조의 공감을 리드할 강한 정부다.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