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출장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공군 1호기’(대통령 전용기) 기내. 윤석열 대통령이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해외 첫 출장의 첫 기내 간담회였습니다.
약 15분 정도 질문과 답변이 오가면서 한반도 외교와 통상 등 사안에 대해 대통령과 기자들 간 진진한 소통이 있었습니다. 다만 정작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궁금했던 사안은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는 이유도 있긴 했지만, 기자들이 정색을 하고 물어볼 용기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질문을 하기 위해 열심히 손을 들었다는 변명을 하지만, 그래도 개운치 않은 감정이 가시지 않습니다. 이번 칼럼을 반성으로 시작하는 이유입니다.
이번 순방에서 국민들의 관심이 쏠린 사안 중 하나는 대통령의 부인인 김건희 여사의 행보입니다. 정치권과 언론은 해외 첫 출장을 나간 윤 대통령보다 김 여사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더 뜨거운 현상을 목도했습니다. NATO 정상회의가 배우자를 동반한 행사를 함께 열었기 때문에 김 여사에 대한 보도가 자연스럽게 이뤄졌습니다. 온라인과 모바일 뉴스에 보도된 김 여사 관련 기사의 클릭수가 윤 대통령을 훨씬 능가했다는 게 언론계 정설입니다.
덕분에 재밌는 에피소드도 있었습니다. 내로라 하는 유력 일간지들을 포함한 상당수 신문 기자들이 한국 시각으로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 신문 기사를 마감한 후에도 온라인 기사를 쓰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대부분 시간적인 이유나 지면 제약상 신문에 들어가지 못한 김 여사 관련 기사였습니다.
온라인 담당 부서장 또는 담당 직속 부장들이 “다른 기사는 몰라도 김건희 기사는 꼭 좀 챙겨달라”고 당부했다는 전언입니다. 한국 시각으로 새벽 시간에 스페인 현지로 직접 전화를 해서 “기사를 왜 빨리 안올리냐”고 독촉한 곳이 있을 정도입니다. 김 여사 관련 기사의 온라인 클릭수가 그만큼 많다는 의미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기사의 깊이와 품질보다 클릭수에 좌우되고 있는 한국 언론계 슬픈 현실이기도 합니다. 이런 김 여사가 대통령실 출입 기자들에겐 밉게 비쳐지는 이유입니다.
김 여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은 이유는 과거에 보지 못했던 대통령 배우자의 모습이기 때문일 겁니다. 한달여 전 제가 썼던 칼럼 <<<a href="https://www.hankyung.com/politics/article/202205288474i"> 한국의 첫 ‘셀럽 영부인’ 김건희 [여기는 대통령실]>>에서 이런 현상을 이미 분석했습니다.
그런데 대중의 이런 관심이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도움이 될까요? 그렇지 않은 측면이 더 많은 듯 합니다.
실제 김 여사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 부정적인 내용이 긍정적인 면을 압도합니다. 고유가, 고물가, 고환율 등으로 어려운 경제 환경 속에 대통령의 부인이 해외에서 화려한 패션을 선보이며 미디어를 점령하고 있으니, 특히 고달픈 국민들에게 좋은 감정이 생길 리가 없습니다 .이런 행보들은 김 여사가 과거 대선 기간 “남편이 대통령이 되는 경우 아내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한 약속과도 거리가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행보가 공개되면서 김 여사는 연예인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게 됐지만,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윤 대통령 지지율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입니다. 해외 첫 순방에서 윤 대통령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지만, 대통령의 지지율은 하락세를 면치 못하는 이유로 분석됩니다.
대통령실 참모들도 이런 상황을 잘 인지하고 있습니다. 한 핵심 참모는 윤 대통령 지지율 하락의 주된 요인을 ①검찰 편중 인사 ② 고물가 등 어려운 경제 ③ 김건희 여사 등 세가지로 요약하더군요. 저는 이 참모에게 “내용은 맞는데 순서가 거꾸로”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시중의 분위기는 다양한 방식을 통해 윤 대통령에게도 전달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선거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윤 대통령은 지지율 변동에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특히 김 여사 관련 사안은 참모들의 이야기를 잘 들으려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면 참모들도 아예 이런 얘기를 꺼내지 않게되는 법이죠. 참모들도 패션 감각이 뛰어난 ‘셀럽 김건희’ 여사가 미울 수 밖에 없습니다.
과거 녹취록에서 털털하고 당당한 ‘걸 크러시’한 성격을 보였던 김 여사가 대중에 나설 땐 조신하고 조용한 모습을 연출하는 것도 ‘이미지 빌딩업’ 컨설팅에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들이 김 여사와 윤 대통령에게 기대한 효과를 가져다 주고 있는 걸까요. 국민들이 윤 대통령에게 바라는 모습들이 이런 것일까요. 대통령실의 참모 뿐 아니라 윤 대통령도 본인도 곰곰히 생각해봐야 할 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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