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로봇은 대한민국의 미래…대학이 좋은 인재 못 길러내 답답"

입력 2022-07-03 16:39   수정 2022-07-04 00:07


지난 3년 가까이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팬데믹은 회귀 불가능한 몇 가지 변화를 가져왔다. 이 가운데서도 비대면 사회가 불러온 디지털 전환은 모든 기업이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 됐다. 정보기술(IT) 기업은 물론 전통 산업군의 기업까지도 디지털 전환을 위해 개발자 확보에 뛰어들었다. 당장 부족한 인력이 최소 2만~3만 명이라는 진단까지 나오고 있다. 장병규 크래프톤 이사회 의장(49)의 최근 가장 큰 관심사도 개발자 양성이다. 2019년 말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에서 물러나고 이듬해 10월 KAIST와 함께 개발자 교육 프로그램 ‘정글 사관학교’를 열었다. 5개월 동안 합숙하며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코딩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현재 4기 교육이 진행 중이다. 지난 1일 서울 강남에서 만난 그는 “정글은 대학 시절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 몰입하면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경험을 지금 세대에게 돌려주고자 시작한 프로그램”이라고 강조했다.

▷회사마다 개발자가 부족하다고 아우성칩니다.

“정확히는 실력 있는 개발자가 부족합니다. 스스로 발전하는 소수가 있기는 해요. 스스로 학습하고, 이직해서 또 학습하고…. 스스로 한다는 게 말은 쉽지만 어려워요. 적절한 조력이 필요한 이유죠.”

▷대학 컴퓨터공학과 정원을 늘려야 할까요.

“전공자 수를 늘리는 것도 방법이지만 본질적으로는 고등교육기관의 수준이 올라가야 합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면 좋지만, 안 해도 상관은 없습니다. KAIST와 함께 소프트웨어 교육 프로그램인 정글을 3기까지 운영하면서 90명 가까이 인력을 배출했는데 전공자는 10%도 되지 않습니다.”

▷대학의 교육 수준이 낮은 편입니까.

“대학교 절반 이상은 제2의 고등학교 수준입니다. 정글에서 뽑은 학생을 보면 입학 성적이 높은 대학의 학생들이 빨리 배우는 게 사실이에요. 4년 동안 공부했는데 (실력 순서가) 그대로라면 대학 교육을 왜 하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거죠. 등록금이 싼 것도 문제 같아요. 실제로 교육해보니 돈이 많이 들어요. 정치인들도 대학 등록금을 낮춰야 한다고 할 게 아니라 어떻게 효과적으로 쓸 것인가를 더 고민해야 한다고 봐요.”

▷정글에서 뭘 가르칩니까.

“지난 20~30년 동안 바뀌지 않았고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을 가르칩니다. 알고리즘, 네트워크 이런 것들입니다. 20년 전에는 자바도, 파이선도 없었어요. 대학이나 개발자 캠프 대다수는 이런 걸 가르치지만 20년 후에는 또 다른 게 나올 테니까요. 기초 지식을 바탕으로 스스로 공부할 수 있다는 효능감이 필요해요.”

▷문재인 정부에서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면서 이런 부분을 고민하지는 않았나요.

“대학 전체 정원은 교육부 소관인데, 대학의 학과별 정원은 총장의 권한이라고 해요. 총장은 교수들이 뽑잖아요. 어느 학과의 정원을 늘리면 다른 학과는 줄여야 하는데 이 학과 교수들이 반대하니 쉽게 답이 안 나와요. 결국 교육부가 주도해야 합니다. 교수 일자리를 보장해주고 필요한 학과의 인원을 늘리는 방법이 현실적이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대학 정원 문제는 진작에 깨야 했다고 봐요.”

▷미국이 신기술 분야의 인재를 쓸어담고 있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미국은 컴퓨터공학 관련 학과의 정원이 지난 10년 동안 급격히 늘었어요. 미국도 인력이 부족했지만, 대학의 자율권이든 뭐든 수를 내서 이걸 늘렸고, 한국은 하지 못했어요. 참 답답합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주요 기술로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클라우드, 로봇 등을 이야기합니다. 한국은 어떤 분야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까요.

“이 가운데서 고르라고 하면 전 로봇과 딥러닝을 꼽겠습니다. 클라우드는 아마존웹서비스(AWS),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이 한참 앞서 있어요. 클라우드는 데이터센터가 아니라 얼마나 좋은 소프트웨어를 옵션으로 제공하는지가 핵심입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영역이고, 이걸 AWS와 MS가 가장 잘해요. 하지만 로봇은 한국이 강점을 갖고 있는 제조기술과 시너지 창출적 결합이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딥러닝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딥러닝은 아직 초기 단계입니다. 발전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요. 딥러닝 원천 기술만 놓고 보면 이미 늦었다고 할 수 있지만 이걸 활용할 수 있는 분야가 무궁무진합니다. 크래프톤이 준비하는 신규 프로젝트가 있는데 TTS(text to speech)를 활용한 응용 영역이에요. 이 기술이야 기존에도 많이 쓰고 있지만 어떻게 응용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서비스가 나올 수 있는 게 많아요. 크래프톤뿐 아니라 한국 기업들이 정말 잘할 수 있는 분야라고 봅니다.”

▷회사에 젊은 직원이 많은데 세대 차이는 없습니까.

“제 부모님 세대는 도시락이 있느냐 없느냐로 구분하는 세대였어요. 저는 좋은 도시락, 나쁜 도시락으로 구분했죠. 하지만 지금 세대는 똑같은 도시락을 먹어요. 중·고등학교 때 의식주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죠.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한국이 너무 빨리 발전해서 세대 간 차이가 뚜렷한 것 같아요. 이런 점을 서로 인정하고 이해하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어떻게 소통하나요.

“크래프톤은 미련할 정도로 회사의 비전을 많이 공유하는 회사입니다. 타운홀 미팅도 매달 라이브로 하고 있어요. 지난 미팅도 다시 볼 수 있고요. 경영자 입장에선 정말 어려운 질문이 많지만 답변하기 위해 고민도 많이 하고 배우기도 많이 배웁니다.”

▷난감했던 질문이 있었습니까.

“괴로웠던 질문은 있어요. 지난해 상장하면서 자사주를 산 직원들이 많은데 올해 들어 주가가 많이 내렸으니까요. 공모가 밑으로 떨어졌는데 직원들은 올해 8월까지 보호예수기간에 묶여 있습니다. 직원들이 타운홀 미팅에서 주가 부양에 신경을 써달라거나 자사주 매입 계획이 없냐고 물어보는데 괴롭더라고요.”

▷자사주를 매입할 계획이 있나요.

“아직 자사주 매입 요건이 안 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크래프톤은 무조건 성장을 해야 한다는 게 경영진 생각입니다. 크래프톤이라는 회사의 실력을 볼 때, 또 게임산업 전체의 전망을 볼 때 성장 여지가 충분합니다.”

▷신사업에 대해선 어떤 고민을 하고 있습니까.

“크래프톤은 죽었다 깨어나도 게임회사예요. 우리가 쓰는 돈의 90% 이상은 게임에 들어가고, 버는 돈의 100%는 게임에서 나와요. 게임을 열심히 만들어 하나씩 내놓다 보면 성공하는 작품이 나올 수 있어요. 흥행 사업이라는 점에서 영화와 비슷하지만, 콘텐츠의 소비 주기가 달라요. 배틀그라운드가 나온 지 6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이용자가 많습니다. ‘서비스로서의 게임(Game as a Service, GaaS)’이 완전히 정착됐어요. 리그오브레전드(LoL)나 리니지도 마찬가지죠. ‘원히트’로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 쌓여가는 구조가 됐어요.”

▷미래에셋과 함께 서울 성수동 이마트 부지를 1조2000억원에 샀습니다. 어떤 공간을 만들 건가요.

“e스포츠 경기장을 포함한 복합 문화공간을 만들려고 합니다. 배틀로얄 게임 장르에서 우리만큼 오래 진지하게 투자하는 회사가 없어요. 10년 투자하면 배틀그라운드 e스포츠가 자리 잡을 거라고 봐요. 게임을 넘어 스포츠로 자리 잡으면 정말 오래갑니다. 이마트 부지가 성수동 일대에서 가장 큰 땅이라고 하더라고요. 랜드마크가 될 건물인 만큼 공공성까지 고려해서 정말 잘 지을 겁니다.”

정리=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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