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에 색을 펴발라 색면(色面)으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색면추상’은 현대 회화를 대표하는 장르 중 하나다. 작품 값이 수천억원에 달하는 거장 마크 로스코(1903~1970)나 바넷 뉴먼(1905~1970)의 그림은 일반인에게도 익숙하다. 하지만 색면추상은 “이런 그림은 나도 그리겠다”는 비아냥을 가장 많이 듣는 장르이기도 하다. 형태가 없고 기교가 잘 드러나지 않아서다. 일부 대가의 작품을 제외한 대부분의 색면추상이 시장에서 별로 인기가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희준(34)의 그림은 예외다. 그가 지난 5월 열린 아트페어 ‘아트부산’에 내놓은 작품 일곱 점은 개막 5분 만에 ‘완판’됐다. 젊은 작가가 그린 추상화가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성과다.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열리고 있는 이희준의 개인전은 그 비결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다. 작가가 2018년부터 서울 풍경을 주제로 그리기 시작한 색면추상 ‘A Shape of Taste(취향의 형태)’ 연작(사진), 지난해부터 시작한 포토콜라주 ‘Image Architect(이미지 건축가)’ 연작 등 회화 총 20점과 조각 작품 4점을 만날 수 있다.
이 작가는 길거리나 여행지 등 다양한 장소를 소재로 한 추상화를 그린다. 풍경을 점·선·면으로 단순화한 뒤 물감 방울을 떨어뜨리거나 물감을 두텁게 쌓아 올려 생동감을 더한다. 사진을 오려 붙이는 콜라주 기법도 적극 활용한다. 그는 “요즘 ‘핫’한 장소를 소재로 하다 보니 젊은 컬렉터들이 친숙하게 느끼고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다.
소재의 특성이나 분위기를 살려낸 색감도 그의 작품이 지닌 매력이다. ‘바르셀로나의 온도’에서는 진한 노란색을 통해 작가가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여행을 갔을 때 느낀 태양의 열기를, ‘낮과 밤’에서는 옅은 노란색을 통해 얇은 커튼을 투과한 햇빛을 표현했다. 2019년 삼성전자가 이 작가의 색을 사용한 비스포크 냉장고를 선보였던 것도 이처럼 뛰어난 색감 덕분이다. 전시는 8월 14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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