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아파트 분양 시장이 빠르게 얼어붙고 있다. 수도권 외곽은 물론 ‘청약 불패’로 통하던 서울에서도 한 달 새 미분양 주택 수가 두 배 가까이 늘면서 부동산 하락장이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추가적인 금리 인상 우려로 매수세가 쪼그라든 상황이어서 민간 아파트 분양 시장의 정체기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할인 분양’까지 나온 민간 아파트
4일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 상반기 서울 민간 아파트 청약 경쟁률은 29.8 대 1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인 164.1 대 1에 비하면 5분의 1 토막이 났다. 전국으로 넓혀봐도 올 상반기 청약 경쟁률은 11.1 대 1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엔 18.4 대 1을 기록했다. 집값이 오를 만큼 올랐다는 인식이 확산하는 상황에서 올해부터 대출 규제까지 강화되면서 민간 아파트 분양 시장은 갈수록 위축되는 모습이다.이달부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3단계가 시행되면서 시장은 더욱 움츠러들고 있다. 올 7월 1일부터 총대출액 1억원이 넘는 차주는 DSR 40%(은행, 비은행 50%) 이내에서만 신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전용면적 60~85㎡의 서울 평균 분양가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중도금 집단대출 상한인 9억원을 넘어선 것도 실수요자에게는 부담이다. 부동산 플랫폼 업체 직방에 따르면 올 상반기 말 기준 서울의 60~85㎡ 이하 아파트의 평균 분양가격은 10억4554만원이다. 전용 60㎡ 이하 아파트의 평균 분양가격도 7억4310만원으로 집계됐다. 85㎡ 초과 대형 아파트의 평균 분양가는 17억5078만원이다. 서울 당산동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실수요자들이 집값이 너무 높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데다 대출 규제 때문에 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계약을 포기하는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올 5월 서울의 아파트 미분양 물량은 688가구로 전달(360가구) 대비 91%가량 증가했다. 2019년 3월 이후 3년2개월 만의 최대치다. 미분양이 길어지자 서울에서도 ‘할인 분양’까지 나오고 있다. 강북구 수유동에 들어서는 칸타빌 수유팰리스는 이달 입주를 앞두고 최대 15%의 할인 분양을 시작했다. 전용 면적 78㎡가 종전엔 11억원대였는데 9억원대까지 떨어졌다. 노원구 공릉동 태릉해링턴플레이스도 최근 전용면적 84㎡ 분양가를 13억원에서 12억7400만원으로 낮췄다.
분양가 싼 공공분양은 여전히 인기
반면 공공 아파트 분양 시장엔 수만 명의 실수요자가 몰리고 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이 공공택지에 공급하는 공공 아파트는 민간 아파트에 비해 청약 기준이 높지만 주변 아파트 시세에 비해 분양가가 최대 수억원씩 낮은 게 가장 큰 장점이다.올 5월 시흥에 공급된 e편한세상 시흥장현 퍼스트베뉴의 경우 전용면적 84㎡의 분양가는 4억7000만원대다. 인근 신축 아파트에 비해 2억~3억원 정도 싸다. 이 때문에 67가구를 모집하는 1순위 청약에 1만2726명이 신청해 189.9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지난달 초 부산 강서구에 선보인 강서자이 에코델타의 경우 132가구를 모집하는 1순위 청약에 1만5163명이 몰렸다. 평균 경쟁률만 114 대 1을 나타냈다. 강서자이 에코델타의 3.3㎡당 평균 분양가는 1388만원으로 부산 지역 민간 아파트 분양가(3.3㎡당 1900만원대)보다 27% 정도 쌌다.
이렇다 보니 올 상반기 전국 공공 분양 아파트 청약 경쟁률은 64.3 대 1로 지난해 같은 기간(24.1 대 1)을 크게 웃돌았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지난해까지는 ‘영끌족’이 민간 분양 시장을 이끌었는데 올 들어서는 집값 부담에 대출 규제, 대출금리 인상까지 겹쳐 민간 분양 수요가 줄어든 대신 상대적으로 저렴한 공공택지 아파트가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은정/하헌형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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