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해 6월 11일 당선 연설에서 임재범의 노래 ‘너를 위해’ 가사를 인용해 한 말이다. 새파란 청년 당수에 대한 기대와 함께 우려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잘 헤쳐 나갈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30대 0선(選)이 나경원·주호영·조경태·홍문표 등 도합 18선의 쟁쟁한 중진들을 제치고 제1야당 대표를 거머쥔 것은 한국 정치사에 남을 일대 사건이었다. “정치의 큰 변화를 예고하는 소중한 자산”(문희상 전 국회의장) 등 긍정 평가가 잇따를 만했다. 정치판 고인 물을 퍼내고 세대교체,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올 것이라는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지금 그가 이런 기대를 충족하고 있나. 대선과 지방선거 연승에는 그의 공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취임 후 매번 당내 소용돌이의 중심에 서 있다는 점에서 보면 후한 점수를 받을 형편도 아니다. 지난 1년여간 그의 싸움 상대를 보면 ‘윤석열 대선 후보(현 대통령)→‘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들→정진석→안철수→배현진→장제원’ 등 끝이 없다.
물론 모든 책임을 그에게 씌울 수만 없다. ‘대표 패싱’ 논란을 일으키고, 당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윤핵관들의 과욕을 꼽지 않을 수 없다. 대표를 흔들어 선거에만 써먹고 버리려 한다는 지적도 들을 만하다. 그럼에도 하루가 멀다 하고 갈등 구도를 만들어낸 이 대표가 당대표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했는지도 따져볼 대목이다.
작년 윤 후보와의 충돌부터 그렇다. 대선 후보가 선출되면 당은 후보가 중심이 되고, 대표는 지원에 총력을 기울이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이 대표는 선거 전략을 놓고 윤 후보 측과 마찰을 빚은 끝에 당무를 보이콧하고 지방으로 내려가 버렸다. 윤핵관의 잘못된 대선 전략에 대한 충격요법이라지만 대표가 파업하는 것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대표를 만나러 대선 후보가 지방으로 내려갔다. 누가 대선판 주인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조수진 선대위 공보단장과 충돌한 뒤 대표가 선대위원장을 그만두고 대선에 손을 뗀 것도 유례를 찾을 수 없다. 최근 그의 우크라이나 방문을 놓고 정진석 의원과 ‘개소리’ ‘싸가지’ 등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험한 말들을 주고받은 일이나, 배현진 최고위원과 다투다가 회의장을 뛰쳐나가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디코이(decoy·유인용 미끼)’ ‘간장 한 사발’ 발언은 정치를 가십화하는 것 같다. 변화, 쇄신을 입에 담기가 민망하다.
‘성상납 의혹’으로 당 윤리위의 징계 결정을 앞두고 코너에 몰리자 언론 인터뷰에서 “내가 역할을 맡으면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지율 하락은) 20일이면 해결할 수 있다”고 남 얘기하듯 한 것은 대표 자격을 묻게 한다. 아무리 윤핵관이 역할을 막았다고 해도 여당 대표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안 했다고 자인한 꼴이다.
이견이 있으면 대화를 통해 문제를 푸는 게 당연하고, 대표에겐 그런 힘과 권위가 있다. 그런데도 툭하면 생중계하듯 장외에서 SNS로 공세를 퍼부으며 좌충우돌 대결 구도로만 몰아갔다.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제가 ‘흑화(黑化)’하지 않도록 만들어달라. 저같이 여론 선동을 잘하는 사람이 그러고 다니면 기대해도 된다”고 노골적 엄포까지 놨다.
여론전을 통해 논란을 증폭시킨 뒤 자신에게 유리하게 판을 이끌어가려는 구시대적인 대중 정치인의 모습을 변화의 기대주에게서 보는 것 같아 여간 씁쓸하지 않다. 이러니 셀프 대변인, 정치 평론가 같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는 사이 보수 혁신 비전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고, 당은 포연만 가득한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이 대표는 윤핵관을 겨냥, “그들이 감당 못하게 달릴 것”이라며 끝까지 대립하겠다는 뜻을 고수하고 있다. 윤핵관을 탓하기 이전에 나만 옳다는 아집에 빠진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윤핵관이 당 분란 원인을 제공했다고 해도 대표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자리다. 갈등 조정은커녕 확대, 재생산에 나서는 모습은 실망스럽다. 징계 여부를 떠나 당원과 국민이 젊은 대표에 대한 ‘불안한 눈빛’을 거두지 못하는 것은 대한민국 정치를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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