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서귀포시 포도뮤지엄에서 5일 개막한 기획전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는 낡은 러버덕들이 줄지어 관객을 맞이한다. 이 전시는 지리적·정서적 영토를 벗어나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있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부부 작가 알프레도&이자벨 아퀼리잔은 정육면체 박스 140개를 쌓아 올린 지붕 없는 집 ‘주소’(2008년)를 전시했다. 50×50×50㎝의 박스 크기는 필리핀 우체국에서 해외로 물건을 보낼 때 세금이 면제되는 규격이다. 각각의 박스에는 전기포트, 인형, 낡은 책, 전화기, 옷가지 등 필리핀 이주 노동자들이 해외로 떠날 때 보낸 생활용품, 고향에서 가족이 보내온 소중한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 부부는 2006년 시드니 비엔날레에 초청받았을 때 두 아이를 데리고 아예 이민을 갔다.
하루에도 5000명씩 이주하는 ‘노동수출국’ 필리핀의 해외 거주 교포는 2500만 명. 한국에도 5만 명의 필리핀 이민자가 살고 있다. 알프레도는 “택배 박스는 필리핀 사람들에게 원래 있던 터전과 지금 있는 곳을 이어주는 소통의 도구이자 고향에 대한 갈망”이라며 “이주민에게 가장 필요한 건 결국 집이라는 생각이 들어 기부받은 실제 택배박스들로 지붕 없는 집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작가는 제주에서 사탕수수를 직접 키우며 노동의 과정을 체험했다. 사진신부와 또래였을 제주 애월고 2학년 학생들과 여덟 차례 워크숍을 하며 이들의 이야기를 영상에 담았다. 하와이의 사진신부와 지금의 제주를 연결하는 영상과 함께 설탕공예로 조각한 사진신부들의 초상 조각은 낯선 땅에서의 외로움과 그 안에 있던 풋풋한 소녀들의 감성을 함께 배치했다. 정 작가는 “설탕공예는 설탕이 금보다 귀했을 당시 유럽 귀족들이 부를 과시하기 위해 만들어 소장하면서 유럽의 전통이 된 조각 형식”이라며 “설탕으로 인해 식민지가 생겨나고 이주민과 노예가 생겨났다는 지점들이 이번 전시의 큰 주제와 맞닿아 있다”고 했다.
표정은 지쳐 있고, 동작엔 힘이 없다. 얼굴엔 여기저기 상처가 나 있다. 눈은 모두 지그시 감았다. 론디노네는 이번 전시를 위해 45명의 광대를 모두 다른 포즈로 제작했다. 낮잠, 한숨, 꿈, 울음, 방귀, 옷 입다 등 홀로 고립된 24시간을 표현한 단어들로 이름을 붙였다. 전시장에는 27명의 광대가 곳곳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론디노네는 창문에 무지개 빛깔의 컬러 포일을 붙인 작품 ‘사랑이 우리를 만든다’도 선보였다. 광대들 사이로 한낮에는 화려한 빛이 스며들어와 이들의 포즈와 대조를 이룬다. 무지개 네온 조각 ‘롱 라스트 해피’는 입구 하늘에 떠 있어 시시각각 변하는 제주의 하늘에서 다양한 각도로 감상할 수 있다. 묵직한 주제의 전시를 위트 있게 열고, 마무리하는 역할을 맡는다.
김희영 포도뮤지엄 총괄 디렉터는 “사회적 조건에 의해 주류와 비주류로 구분되기 이전에 수많은 공통점을 가진 우리의 모습을 기억하고자 마련한 전시”라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7월 3일까지.
서귀포=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