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일 전 서울시설공단 이사장(사진)은 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가혹한 처벌로 경영자를 일벌백계하겠다는 중대재해처벌법만으로는 산업재해를 줄일 수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한양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조 전 이사장은 1985년 기술고시 합격 후 서울시 안전·인프라 분야에서 37년간 근무한 베테랑 공무원 출신이다. 1994년 성수대교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현장도 뛰어다닌 국내 도시안전 분야의 ‘산증인’으로 불린다. 도시안전실장(1급)을 거쳐 2019년부터 서울시설공단 이사장을 지내다가 올초 퇴임했다.
그는 퇴임 5개월 만인 이달 초 《아픔을 딛고 안전사회로-중대재해처벌법의 개선을 위한 제언》이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했다. 이 책에서 올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의 졸속 통과 과정과 부작용 등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도시안전을 총괄하던 전직 고위 공무원이 논란을 무릅쓰고 중대재해처벌법을 비판한 책을 낸 이유가 뭘까.
조 전 이사장은 작년 말 공기업 최고경영자(CEO) 포럼에서 고용노동부 관계자의 중대재해처벌법 강의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당시 고용부 간부는 기업들이 근로자가 실수해도 문제가 되지 않도록 만들어 놔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 능력을 갖춘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법적 처벌 강화는 계획범죄에만 효과가 있을 뿐 휴먼에러는 겁박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조 전 이사장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사회 전반적으로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가혹한 처벌로 일벌백계함으로써 범죄를 방지하겠다는 이른바 ‘위하력(威力)’을 앞세운 법 취지는 그 자체부터 틀렸다고 했다. 그는 “부주의나 무시에 따른 휴먼에러는 사전 교육과 인사 조치 등을 통해 개선해야 하는 것”이라며 “법적 제재를 통해 실수를 제어한다는 믿음 자체가 틀렸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국회가 재난 안전 이슈를 방치하고 있다가 노동계 요구에 못 이겨 졸속 입법에 나선 것이 혼란의 시작이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조 전 이사장은 “과거 산업재해를 초래한 ‘빨리빨리’ 문화를 정부와 국회가 그대로 답습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 취지와 입법 단계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진 탓에 경영자들이 법적 책임을 면하는 데만 몰두하는 것도 심각한 부작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경영자들이 현장에서 위험을 줄이거나 안전 역량을 강화하기보다는 법적 책임을 덜기 위해 법률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면서 대형 로펌들만 대박이 났다”고 비판했다.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한 조 전 이사장의 해법은 ‘처벌’이 아니라 ‘인센티브’다. 그는 “아이가 성적이 떨어진다고 체벌로만 다스리면 겁박과 폭력일 뿐”이라며 “기업에도 위험요인을 찾고 안전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과감한 인센티브를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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