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가 ‘성 상납 증거인멸 교사’ 의혹을 받는 이준석 대표에게 당원권 정지 6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현직 집권여당 대표에 대한 징계는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번 중징계로 임기를 11개월 남겨둔 이 대표는 사실상 대표직을 수행할 수 없게 됐다.
초유의 당대표 중징계
윤리위는 8일 제5차 전체회의를 마친 뒤 이 같은 내용의 징계를 심의·의결했다고 밝혔다. 윤리위는 전날 오후 7시부터 이날 새벽 2시 45분께까지 국회 본관에서 마라톤 회의를 열었다. 윤리위는 이날 회의에서 이 대표의 소명을 듣고 내부 논의를 거친 끝에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이양희 윤리위원장은 윤리위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사실확인서의 증거 가치, 이 대표 본인 및 당 전체에 미칠 영향, 당 대표와 김철근 당대표 정무실장 간 업무상 지위관계, 사건의뢰인과 변호사 간 통상적 위임 관계, 소명 내용과 녹취록, 언론에 공개된 자료를 비롯해 김 실장이 본인의 일이 아님에도 7억원이라는 투자유치 약속 증서 작성을 단독으로 결정했다고 믿기 어려운 점을 고려해 이 대표의 소명을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이 대표는 윤리규칙 제4조 품위유지 의무 위반를 위반했다”고 징계 이유를 밝혔다.
다만 이 위원장은 “징계심의 대상이 아닌 성상납 의혹에 대해선 판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같은 의혹으로 징계위에 회부된 김철근 당 대표 정무실장에 대해서는 품위유지 의무 위반을 이유로 당원권 정지 2년 중징계를 의결했다. 이들에 대한 징계 효력은 윤리위 결정과 동시에 발생한다.
이 대표는 ‘성 상납 및 증거 은닉 교사’ 의혹을 받고 있다. 이 대표가 2013년 중소기업 아이카이스트의 대표인 김성진 씨에게 성 접대를 받았는데, 문제가 불거지자 측근인 김 실장에게 의혹을 무마하라고 지시했다는 게 골자다.
김 실장은 성 상납 의혹 제보자인 장 모 씨를 만나 '성 상납이 없었다'는 취지의 사실확인서를 받고 '7억원 투자 각서'를 써준 의혹을 받고 있다. 장씨는 김성진 대표의 수행원이다.
대표직 유지 사실상 힘들 듯
이번 중징계로 이 대표는 대표직 자리를 더 이상 유지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임기를 11개월 남겨둔 상황에 임기 절반이 넘는 6개월 동안 당 대표로서 직무를 수행하거나 권한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당 내부에서 조기 사퇴를 압박하는 목소리가 거세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이 대표는 윤리위 결정에 강경 대응으로 맞설 것으로 보인다. 우선 법원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낼 가능성이 있다. 이럴 경우 징계 적절성을 두고 법적 공방이 예상된다. 윤리위에 재심을 신청하거나 당헌·당규로 징계 무력화에 나설 가능성도 나온다.
윤리위 규정에 따르면 당 대표는 특별한 사유가 있는 때 최고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윤리위원회의 징계처분을 취소 또는 변경할 수 있다. 이 대표 측이 ‘윤리위 징계가 정치적인 음해’라는 프레임을 내세워 여론전에 나설 수도 있다. 다만 이 대표가 윤리위 결정에 강경하게 맞설수록 당 내홍은 더 깊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게 정치권 시각이다.
후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민의힘 초선의원은 “집권 초기인데 ‘일하는 여당’이 아니라 세력 다툼하는 모습만 부각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중진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은 다음달 당 대표를 선출하면 본격적인 ‘대여(對與) 투쟁’에 나설 텐데 우리(국민의힘)는 집안 싸움하는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복잡해진 차기 당권 구도
차기 당권 구도에도 관심이 쏠린다. 국민의힘 당헌에 따르면 궐위된 당 대표의 잔여 임기가 6개월 이상이면 60일 이내에 임시 전당대회를 열어야 한다. 이 대표 임기는 11개월이 남아 있는 만큼 임시 지도부 임기는 내년 6월까지다. 이후 다시 전당대회를 열어 2024년 총선 공천권을 갖는 지도부 선출해야 된다.한편에서는 당헌·당규를 고쳐 임시 지도부가 아니라 2년 임기를 가진 당대표를 뽑는 조기 전당대회를 열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 경우 새 대표가 차기 총선까지 관리하게 된다.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운영하다 차기 총선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연초에 전대를 여는 방안도 거론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정권 교체도 이루고 지방선거도 이긴 상황인데 이 대표 개인 문제로 당 대표가 궐위됐다고 비상체제를 꾸리는 건 정치적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어떤 방향으로 가느냐에 따라 당권 주자로 꼽히는 김기현, 안철수, 정진석, 권성동 의원의 셈법은 더 복잡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양길성/맹진규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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