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분기까지만 해도 최대 매출을 올리며 승승장구하던 국내 주요 기업들의 실적이 꺾이는 모양새다. 반도체 가전에 이어 디스플레이 건설 조선 화학 업종도 실적 기대치가 낮아지는 추세여서 실적 부진 공포가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고임금의 4중고를 버텨온 기업들의 체력이 바닥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하반기 국내 경제의 가장 큰 리스크로 꼽힌다. 기업들의 실적 증가세가 둔화 또는 악화하는 것은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 전선이 위태로워졌다는 방증이다. 올 상반기 무역적자가 103억달러로 반기 기준 사상 최대치로 불어난 상황이어서 위기감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사상 최대 규모로 쌓인 재고 부담이 기업들을 짓누르는 상황에서 실적까지 본격적으로 나빠지면 최악의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주요 기업들의 실적 부진이 보내는 경고 사인을 예의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기업의 생산·투자 활동에 걸림돌이 되는 각종 규제를 최대한 빠른 속도로 풀고 수출 지원에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 ‘퍼펙트 스톰’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한 만큼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삼성전자가 지난 7일 발표한 2분기 잠정 실적에 따르면 매출은 77조원, 영업이익은 14조원이었다. 작년 2분기에 비해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20.9%, 11.4% 늘었지만, 1분기보다는 부진했다. 매출은 작년 3분기(74조원)와 4분기(76조6000억원), 올해 1분기(77조8000억원)까지 3개 분기 연속 역대 최고치 기록을 갈아치웠지만, 2분기 들어 전분기보다 1% 줄어들며 성장세가 주춤했다. 영업이익은 1분기(14조1200억원)보다 0.85% 감소했다. 경기 둔화 여파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스마트폰·가전 등 세트(완성품) 판매가 부진한 게 실적의 발목을 잡았다. 증권가에선 2분기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출하량이 6000만대 수준으로 1분기보다 1000만대 이상 줄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 같은 기간 TV 출하량도 28% 감소한 것으로 추산했다.
문제는 3분기 이후의 실적 전망은 더 안 좋다는 점이다. 그동안 실적을 방어해왔던 반도체 전망에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대만의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3분기 D램 가격이 2분기보다 10%가량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낸드 플래시 가격은 이미 지난달부터 꺾였다.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메모리카드·USB향 낸드플래시 범용제품(128Gb 16Gx8 MLC)의 6월 고정거래가격은 4.67달러로 5월(4.81달러)보다 3%가량 떨어졌다. 증권사들은 이를 반영해 삼성전자의 연간 실적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인플레이션과 경제 불확실성 고조로 세계 정보기술(IT) 업계 호황이 시들해지면서 삼성전자 실적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재택근무로 인한 전자제품 수요 증가와 정부 경기부양책 등의 혜택을 입었지만, 인플레이션으로 전자제품 교체 수요가 줄어들면서 전 세계 반도체 호황의 둔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전자제품 완제품 제조사이자 반도체 등 부품 공급업체이기도 한 삼성전자의 실적은 IT업계 경기를 알려주는 지표라고 지적했다.
미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테크놀러지도 지난주 실적 발표회를 열고 6~8월 매출 예상치를 72억달러(약 9조3000억원)로 제시했는데, 이는 시장 전망치인 91억4000만달러를 크게 밑도는 수치다. ‘빅3’ D램 업체 중 실적 발표가 가장 빨라 업황 ‘풍향계’로 여겨지는 마이크론이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은 것이다. 마이크론은 신규 공장과 설비에 대한 투자를 줄여 생산량 조절에 나설 방침이다.
TV 사업의 부진이 두드러졌다. 세계적으로 TV 수요가 줄어든 여파다. 그나마 전장(VS)사업 부문의 매출 성장이 위안거리였다. VS사업본부의 분기 매출액이 처음으로 2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영업이익도 2015년 4분기 이후 26개 분기 만에 흑자를 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터리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은 2분기 영업이익이 1956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73% 급감했다. 매출은 5조706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2% 줄었다. 글로벌 물류 대란과 원재료 값 상승이 실적 부진의 주요인이다. 중국의 코로나 봉쇄 정책으로 테슬라 상하이 공장의 폐쇄가 장기화하면서 배터리 공급이 지연된 게 큰 타격을 줬다. 리튬 니켈 등 원재료 가격 상승도 직격탄이 됐다. 지난해 2분기 실적에는 SK온으로부터 받은 1조원가량의 합의금이 반영됐다는 점도 실적 악화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반도체와 가전 업체를 중심으로 재고가 급증했다. 삼성전자의 재고자산은 45조5907억원으로 작년 3월 말보다 55.4%(16조9708억원) 늘었다. SK하이닉스(10조3927억원)와 LG전자(10조2143억원)의 재고자산도 각각 68.1%, 27.7% 증가했다. 재고 급증이 기업들의 설비 투자를 억누를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5월 기준 제조업 재고율(재고/출하)은 114.5%로 역대 5월 기준으로는 코로나19를 겪었던 2020년 5월(127.5%)과 외환위기 때인 1998년 5월(137.6%)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이건호 논설위원 leek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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