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가 내린 사상 초유의 ‘현직 당 대표 징계’ 결정에는 법적 잣대 보다 정무적 판단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사실 관계를 입증할 경찰 수사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윤리위는 이준석 대표의 중징계를 결정했다. 이 대표가 강경 대응을 예고한 만큼 당 내홍은 윤리위 결정 이후에도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이번 징계로 당 대표직이 사실상 궐위되면서 차기 당권을 둘러싼 세력 다툼도 거세질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로 윤리위는 줄곧 “징계 여부와 경찰 수사는 관련이 없다”며 법적 잣대를 고려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양희 윤리위원장은 7일 회의 전 기자들과 만나 “윤리위는 수사 기관이 아니다. 수사 기관 결정에 따라 윤리 강령과 규칙을 판단한다면 윤리위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18일에도 “수사 기관에 준하는 판단을 요구하는 것은 당헌·당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주장”이란 내용의 입장문도 냈다. 법조인 출신의 한 초선의원은 “수사 기관에서 사실 관계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법리적 판단은 애초에 불가능했고, 정무적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윤리위는 8일 이 대표 징계를 심의·의결할 때도 ‘성 상납 및 증거 은닉 교사’ 의혹 중 증거 은닉 교사에 대해서만 조사했다. 이 위원장은 “사실확인서의 증거 가치, 소명 내용과 녹취록 등과 '김철근 당대표 정무실장이 본인 일이 아닌데도 7억원의 투자유치 약속 증서 작성을 단독으로 결정했다고 믿기 어려운 점'을 고려해 이 대표의 소명을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다만 의혹의 실체인 성 상납 의혹에 대해서는 조사하지 않았다. 이 위원장은 “징계심의 대상이 아닌 성상납 의혹에 대해선 판단하지 않았다”고 했다.
다만 당내 세력을 구축하는 데는 미흡했다는 평가가 많다. 대선 기간인 지난해 11월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과 갈등을 겪자 모든 일정을 취소해 리더십 부족 논란이 일었다. 박성중 의원은 지난 4일 한 방송에 나와 “국민의힘 의원 80%가 대선 당시 (이 대표 탄핵에) 동의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새 정부 출범 뒤에는 친윤(친윤석열)계와의 다툼이 격해졌다. 안철수 의원의 최고위원 추천을 둘러싼 갈등이 대표적이다. 이 대표가 주도적으로 이끈 당 혁신위원회가 ‘공천 개혁’을 예고하자 지역구를 둔 현역 의원들과는 마찰이 빚어졌다.
윤리위 규정에 따르면 당 대표는 특별한 사유가 있는 때 최고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윤리위원회의 징계처분을 취소 또는 변경할 수 있다. 이 대표 측이 ‘윤리위 징계가 정치적인 음해’라는 프레임을 내세워 여론전에 나설 수도 있다.
이 대표는 이날 KBS 라디오에 나와 '당 대표에서 물러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럴 생각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윤리위 규정을 보면 징계 처분권이 당 대표에게 있다"며 "(징계를) 납득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면 우선 징계 처분을 보류할 그런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가처분이라든지 재심이라든지 이런 상황들을 판단해서 모든 조치를 하겠다"고 덧붙였다. 자진 사퇴 의향에 대해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거듭 일축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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