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 게이트’에 이어 거짓 해명으로 총리직 사퇴 압박을 받아온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7일(현지시간) 보수당 당수 자리에서 물러났다. 도덕성 논란이 사퇴를 촉발했지만, 근본 원인은 경제 파탄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제거되자 유럽 증시도 일제히 상승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DAX30 지수는 1.97% 상승했고, 프랑스 파리 CAC40 지수는 1.6% 올랐다.
CNN은 존슨 총리의 사임이 예견된 일이라고 진단했다. 영국 경제가 악화일로에 놓였기 때문이다. 주요 7개국(G7) 중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지난 5월 영국의 물가상승률은 9.1%를 기록했다. 40년 만에 정점을 찍었다. G7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다. 전문가들은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올해 영국의 물가상승률은 11%를 기록할 거라고 입을 모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존슨 총리가 영국 보수당의 기조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임기 동안 그는 법인세율을 기존 19%에서 26%로 올릴 계획을 세웠다. 해외 자본을 유치하려면 낮춰야 하는 세목이다. 기업 관련 규제도 유럽연합(EU)의 표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브렉시트 완수라는 공약을 이행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WSJ은 “영국 유권자들은 보수당이 유능할 거라 기대하고 표를 던졌다”며 “정작 존슨 총리는 ‘가짜 보수주의’로 일관했다”고 비판했다.
노동정책도 문제였다. 영국 정부는 이민자들이 대거 줄어든 사태를 방관했다. 이 때문에 영국 기업들은 인건비 상승 부담을 떠안았다. 지난해 6월부터 3개월 동안 영국의 노동자 공급이 역대 최저치로 떨어졌다. 100만여개의 일자리가 공석이었다. 트럭 운전사, 대형마트 종업원 등 주로 저임금 일자리가 부족했다. 재고가 제대로 운송되지 않아 일부 점포들은 단기 폐쇄를 결정하기도 했다.
노동 부족에도 존슨 총리는 이민제도를 개편해 상황을 악화했다. 이민자들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 이주 장벽을 높인 것. 영국 싱크탱크인 인디펜던트 연구소의 조 마셜 연구원은 “영국이 EU 탈퇴 후 유연한 이민정책을 유지했다면 노동자 수급난에 시달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피해는 영국 가계가 떠안았다. 지난해부터 상승한 인건비가 물가 상승을 유발했다. 생계비가 치솟자 저소득층과 빈곤층이 타격을 입었다. 2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도 고공행진을 시작해서다. 에너지 비용을 보조하려 가구당 400파운드(약 62만원)를 지원했다.
물가상승이 지원 효과를 상쇄했다. 영국 중앙은행(BOE)은 가계 가처분소득이 1964년 기록을 시작한 뒤로 역대 두 번째의 축소 폭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위기는 더 심각해질 예정이다. 전력 공급업체에 규제하던 가격상한제가 올해 가을 개정될 방침이다. 영국 규제당국은 지난 4월 상한선을 54% 올렸고 예산 축소 우려로 인해 유류세 인하는 거부했다.
물가가 치솟은 가운데 영국 정부는 국민건강서비스(NHS) 예산을 확보하려 소득세를 2.5% 인상했다. 세금 인상으로 가계 가처분소득은 더 줄었다. 석유업체와 가스업체에는 총 50억파운드(약 7조원)에 달하는 횡재세를 매겼다. 영국 북해에 원유 공급망 투자에 들어갈 자금이 정부 금고로 향한 것이다.
영국 국가통계청(ONS)에 따르면 지난 4월 영국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보다 0.3% 축소됐다. 서비스업, 제조업, 건설업 등 경제의 3대 축이 모두 축소됐다. 지난 5월 소매판매액도 2개월 연속 감소했다. 영국 중앙은행은 지난 5일 “영국 실물경제는 더 악화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지난달 영국의 2023년 GDP 성장률은 0%에 수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장 큰 문제는 국가부채다. 영국 정부가 보조금을 퍼붓기 시작하자 부채가 급증했다. 현재 영국의 국가부채는 지난해 GDP의 90%에 육박했다. 영국 예산책임국(OBR)은 장기적으로 GDP의 250%까지 불어날 거라고 예상했다.
올해 들어 영국의 무역 적자폭도 커졌다. 예산책임국은 이미 3월부터 “영국의 무역 회복 적기를 놓쳤다”는 결론을 냈다. 올해 1분기 영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지난해 GDP의 8.3%까지 치솟았다. CNN은 영국이 수출보다 수입이 더 많은 상황에서 외국인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해야 하지만 EU와의 관계가 악화했다고 보도했다.
후임 총리에겐 임기 시작부터 난항을 겪게 됐다. 감세와 공공지출을 할 여지가 없어져서다. 다음 총리 후보자로는 벤 웰러스 국방부장관, 페니 모돈트 국제통상부 부장관 등이 거론되고 있다. 영국 하원의 외교위원장인 톰 투겐헷 보수당 의원은 7일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차기 당수 및 총리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가디언에 따르면 보수당 하원의원을 규합해 총리 사퇴를 이끈 인물이라는 평가받는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英 총리 불명예 퇴진에 유럽 증시 반등
이날 존슨 총리가 사임을 표명하자 영국 증시가 되살아났다. 영국 런던증시 대표 지수인 FTSE100은 전 거래일보다 1.14% 상승한 7189.09에 마감했다. 영국 파운드화도 반등했다. 파운드화 환율은 전일 대비 0.14% 상승해 1.2047달러를 기록했다. 임기 내내 구설에 오르며 여론의 뭇매를 맞던 존슨 총리에겐 뼈아픈 소식이다.정치적 불확실성이 제거되자 유럽 증시도 일제히 상승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DAX30 지수는 1.97% 상승했고, 프랑스 파리 CAC40 지수는 1.6% 올랐다.
CNN은 존슨 총리의 사임이 예견된 일이라고 진단했다. 영국 경제가 악화일로에 놓였기 때문이다. 주요 7개국(G7) 중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지난 5월 영국의 물가상승률은 9.1%를 기록했다. 40년 만에 정점을 찍었다. G7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다. 전문가들은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올해 영국의 물가상승률은 11%를 기록할 거라고 입을 모았다.
3년 임기 동안 펼친 '가짜 보수주의'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경제를 수렁으로 빠트렸다. 존슨 총리는 2019년 브렉시트를 완수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다. 하지만 3년 동안 헛다리를 짚었다는 지적이 나온다.월스트리트저널(WSJ)은 존슨 총리가 영국 보수당의 기조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임기 동안 그는 법인세율을 기존 19%에서 26%로 올릴 계획을 세웠다. 해외 자본을 유치하려면 낮춰야 하는 세목이다. 기업 관련 규제도 유럽연합(EU)의 표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브렉시트 완수라는 공약을 이행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WSJ은 “영국 유권자들은 보수당이 유능할 거라 기대하고 표를 던졌다”며 “정작 존슨 총리는 ‘가짜 보수주의’로 일관했다”고 비판했다.
노동정책도 문제였다. 영국 정부는 이민자들이 대거 줄어든 사태를 방관했다. 이 때문에 영국 기업들은 인건비 상승 부담을 떠안았다. 지난해 6월부터 3개월 동안 영국의 노동자 공급이 역대 최저치로 떨어졌다. 100만여개의 일자리가 공석이었다. 트럭 운전사, 대형마트 종업원 등 주로 저임금 일자리가 부족했다. 재고가 제대로 운송되지 않아 일부 점포들은 단기 폐쇄를 결정하기도 했다.
노동 부족에도 존슨 총리는 이민제도를 개편해 상황을 악화했다. 이민자들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 이주 장벽을 높인 것. 영국 싱크탱크인 인디펜던트 연구소의 조 마셜 연구원은 “영국이 EU 탈퇴 후 유연한 이민정책을 유지했다면 노동자 수급난에 시달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피해는 영국 가계가 떠안았다. 지난해부터 상승한 인건비가 물가 상승을 유발했다. 생계비가 치솟자 저소득층과 빈곤층이 타격을 입었다. 2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도 고공행진을 시작해서다. 에너지 비용을 보조하려 가구당 400파운드(약 62만원)를 지원했다.
물가상승이 지원 효과를 상쇄했다. 영국 중앙은행(BOE)은 가계 가처분소득이 1964년 기록을 시작한 뒤로 역대 두 번째의 축소 폭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위기는 더 심각해질 예정이다. 전력 공급업체에 규제하던 가격상한제가 올해 가을 개정될 방침이다. 영국 규제당국은 지난 4월 상한선을 54% 올렸고 예산 축소 우려로 인해 유류세 인하는 거부했다.
물가가 치솟은 가운데 영국 정부는 국민건강서비스(NHS) 예산을 확보하려 소득세를 2.5% 인상했다. 세금 인상으로 가계 가처분소득은 더 줄었다. 석유업체와 가스업체에는 총 50억파운드(약 7조원)에 달하는 횡재세를 매겼다. 영국 북해에 원유 공급망 투자에 들어갈 자금이 정부 금고로 향한 것이다.
英 경제 성적 '낙제점'
잇따른 정책 실패로 세계 경제 5위 대국이던 영국 경제가 쇠퇴하기 시작했다. 3년 동안 곪았던 경제난이 올해를 기점으로 드러났다.영국 국가통계청(ONS)에 따르면 지난 4월 영국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보다 0.3% 축소됐다. 서비스업, 제조업, 건설업 등 경제의 3대 축이 모두 축소됐다. 지난 5월 소매판매액도 2개월 연속 감소했다. 영국 중앙은행은 지난 5일 “영국 실물경제는 더 악화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지난달 영국의 2023년 GDP 성장률은 0%에 수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장 큰 문제는 국가부채다. 영국 정부가 보조금을 퍼붓기 시작하자 부채가 급증했다. 현재 영국의 국가부채는 지난해 GDP의 90%에 육박했다. 영국 예산책임국(OBR)은 장기적으로 GDP의 250%까지 불어날 거라고 예상했다.
올해 들어 영국의 무역 적자폭도 커졌다. 예산책임국은 이미 3월부터 “영국의 무역 회복 적기를 놓쳤다”는 결론을 냈다. 올해 1분기 영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지난해 GDP의 8.3%까지 치솟았다. CNN은 영국이 수출보다 수입이 더 많은 상황에서 외국인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해야 하지만 EU와의 관계가 악화했다고 보도했다.
후임 총리에겐 임기 시작부터 난항을 겪게 됐다. 감세와 공공지출을 할 여지가 없어져서다. 다음 총리 후보자로는 벤 웰러스 국방부장관, 페니 모돈트 국제통상부 부장관 등이 거론되고 있다. 영국 하원의 외교위원장인 톰 투겐헷 보수당 의원은 7일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차기 당수 및 총리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가디언에 따르면 보수당 하원의원을 규합해 총리 사퇴를 이끈 인물이라는 평가받는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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