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시계가 인간의 삶에 본격적으로 강력한 영향을 미친 것은 19세기다. 그리고 그 본고장은 영국이었다. 19세기 후반 세계 전역을 지배했던 ‘대영제국’은 세계 각지의 영토뿐 아니라 각종 주요 표준까지 지배했다. 이와 함께 자연스럽게 영국이 세계 측량 단위의 기점 역할도 병행했다. 1884년 국제위원회는 런던 근교 그리니치를 지나는 선을 세계 경도의 기준점인 0으로 삼았다. 이때부터 각국의 지도 제작자들은 자국 수도를 세계 중심에 놓던 습관을 버리고 경도에 일련번호를 매기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동의해야 했다. 또 영국을 기점으로 하는 지리적 ‘개념’도 등장했다. 아시아 대륙은 대영제국과의 거리에 따라 근동(近東·the Near East) 중동(中東·the Middle East) 극동(極東·tha Far East)으로 구분됐다. 이 같은 영국 중심의 기준은 시간 측정에도 적용됐다. 영국 그리니치의 시간이 세계 시간을 기록하는 원점(세계표준시 GMT)이 되고, 지금도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후 시계 보급이 확대되면서 시간을 균질적으로 나누게 됐다. 낮이 긴 여름이나 낮이 짧은 겨울이나 동일한 시간대로 구분되면서 전국의 시간을 통일하고, 그 기준을 잡으려는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일찍이 프랑스에선 1370년 샤를 5세가 파리 시테섬에 있는 궁전에 설치된 시계를 기준으로 파리의 모든 시계를 맞추라는 포고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백년전쟁에 관한 《연대기》를 쓴 장 프루아사르는 1380년 무렵 《연대기》를 쓰던 도중에 성무일과를 기준으로 기록하던 시간을 시계에 따른 시간으로 바꿔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정확한 시간은 측정하기도 어려웠을 뿐 아니라 필요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자연의 주기에 따른 대단히 유동적인 시간 기준에 의거해 살아갔다.
2. 그리니치 표준시를 기준으로 세계 각국의 시간을 확인해보자.
3. 우리나라가 극동지역으로 분류된 이유를 본문에서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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