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등식은 훗날 등장하는 지중해 문명에도 적용됩니다. 영어로 표기되는 지중해(Mediterranean) 역시 그리스어로 ‘땅 사이의 바다’를 뜻합니다. 땅 사이에 놓인 바다를 지배한 것은 그리스와 로마였습니다. 지중해는 유럽 세계를 잇는 평평한 도로와도 같았습니다. 배를 띄우면 어디든 갈 수 있었죠. 이는 곧 지중해가 상업 중심로였다는 의미입니다. 자본과 물건, 사람이 오가는 바닷길을 장악하는 나라가 최강 국가가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습니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성장하면서 그리스 문명은 지중해의 ‘슈퍼 파워’가 됐습니다. 페르시아와 그리스 간 전쟁도 사실 해상패권을 둘러싼 싸움이었죠. ‘해상무역=국가의 부(富)’였기 때문에 배를 만들고 항구를 넓히고, 해군을 키우는 일은 제1의 국가 정책이었습니다. 21세기 지금도 바다를 장악한 미국이 세계 무역을 주도하지 않습니까?
로마는 지중해 전역을 지배한 첫 번째 제국이었습니다. 이탈리아반도는 지중해 가운데로 툭 튀어나와 있어 로마의 입지는 물을 지배하기에 매우 유리했습니다. 로마의 잘 조직된 토목 기술은 지금도 유명합니다. 세계의 중심지가 된 로마가 물 공급 시설에 얼마나 많은 연구와 투자를 했는지는 기록으로 온전히 남아 있답니다. 당대의 ‘메가 시티’ 로마가 유지되기 위해선 안정적인 물 공급이 필수였죠.
기원전 6세기에 살았던 클로아카 막시마는 ‘위대한 하수도 건설자’로 통할 만큼 초기 로마에 대규모 수리 시설을 만들었답니다. 한참 뒤 그의 ‘물 정신’을 이은 사람은 위대한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오른팔 마르쿠스 아그리파 장군이었습니다. 미술 데생 시간에 등장하는 두상(頭像)의 주인공이죠. 그는 로마 상하수도 시설을 서기 33년에 완성했습니다. 이후에 등장한 율리우스 프론티누스는 ‘로마시의 물 공급론’이라는 논문을 썼는데 아그리파의 성공과 열정을 벤치마킹했다는군요. 중국 수나라와 당나라의 중국 통일 역시 물과 관련이 깊어요. 610년 완공된 양쯔강과 황허강을 연결하는 대운하는 1770㎞에 달하는 거대한 땅을 연결했고 이것이 강력한 중앙집권 문명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대운하를 기반으로 한 중국 문명은 유럽의 어떤 문명보다 앞서 있었던 거죠.
이슬람 문명과 몽골 문명이 쇠퇴한 이유가 물에 취약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사막은 바다보다 역동적이지 못했고, 일시적으로 바다를 제패하긴 했지만 늘 물 부족에 시달려야 했으므로 오래가지 못했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유목 문명 역시 내륙에만 치중했기 때문에 지배력을 오래 유지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지리상의 발견은 바다를 아는 데서 비롯됐습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 영국은 바다를 지배해 패권국이 된 대표적인 나라입니다. 물의 힘을 과학적으로 사용한 영국은 증기력으로 산업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미국은 이리호와 미시시피강을 이용해 경제를 키웠고, 파나마 운하를 파서 대서양과 태평양을 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성장을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물과 관련된 거죠. 물을 잘 관리하지 못하고, 물을 허비하고, 물 공급을 하늘에만 맡긴 천수답 문명은 쇠퇴했습니다.
고기완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2. 로마의 상하수도를 건설한 아그리파 장군이 누구인지 알아보자.
3. 파나마 운하가 언제,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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