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여성 화가 가브리엘레 뮌터(1877~1962)는 예외에 속한다. 그는 추상미술 거장 바실리 칸딘스키의 제자이자 연인이었다. 당시 이만한 ‘거물’을 연인으로 둔 여성 화가들은 작품 활동을 그만두고 내조에 집중하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뮌터는 계속 작품 활동을 하며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했다.
독일 미술사학자이자 작가인 보리스 폰 브라우히취가 지은 《가브리엘레 뮌터》는 뮌터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막대한 재산은 뮌터가 작품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기반이 됐다. 삶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남성 화가들은 뮌터를 무시하면서도 경계했다. 뮌터에게 칸딘스키에 기생하는 ‘좀나방’이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뮌터는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성에 대한 편견을 역이용했다. 당시 남성 화가들은 한 가지 형식과 화풍에 천착하는 게 보통이었다. 반면 뮌터는 초상화와 꽃그림부터 동판화와 사진까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신을 표현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뮌터는 팔색조처럼 다양한 매력을 뽐내는 화가로 미술사에 남았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