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횡령 폭탄, 불증시 꺼질 때 드러난다

입력 2022-07-08 17:33   수정 2022-07-09 00:53

거액 횡령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터진다”는 말까지 나온다. 지난 6월 KB저축은행, 새마을금고, 농협이 줄줄이 사건에 휘말리더니 7월 들어서기 무섭게 현대제철 메리츠자산운용 등으로 꼬리를 물 듯 터져 나오고 있다.

8일 경기북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횡령·배임) 혐의로 파주지역농협 직원 A씨(32)를 검찰에 송치했다. A씨는 5년간 자신이 근무하던 지역농협에서 자재관리(물품 구매·판매) 등의 업무를 담당하면서 물품 구매 대금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횡령액은 확인된 것만 76억원이다.

농협 사건을 포함해 올 상반기 드러난 거액 법인 횡령만 15건이다. 건당 횡령 규모도 커지는 추세다. 상장사 역대 최대 규모 횡령 사건인 오스템임플란트(2215억원)를 비롯해 우리은행(614억원) 계양전기(245억원) 농협(136억원)이 모두 100억원을 넘겼다. 합치면 4000억원에 육박한다.

횡령 범죄는 장기간, 조용히 지속되다 한순간에 터져 나와 ‘소리 없는 시한폭탄’으로도 불린다. 주식, 암호화폐 등 투자시장의 부침과 연동하는 특성이 있다는 게 통설이다. 활황일 때는 범죄 행위가 잠복해 있다가 침체기가 길어지면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일종의 ‘사이클’ 현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주식시장이 활황일 때는 투자 성공으로 들키지 않는 경우가 많아 횡령 발생이 줄어드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했다. 코스피지수가 사상 처음 3000 고지를 밟았던 지난해 경찰에 신고된 횡령사건(1만3967건)이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는 설명이다.

최근 발생한 거액의 횡령사건은 투자 침체기와 맞물린 경우가 대다수다. 오스템임플란트, 계양전기, 아모레퍼시픽 직원이 주식 투자 등으로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을 탕진했고, 우리은행 직원은 선물에 투자했다가 300억원을 날렸다. 파주농협 직원 A씨도 빼돌린 돈 상당액을 암호화폐에 넣었다가 잃은 것으로 조사됐다.

오현아/구민기 기자 5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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