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명 중 7명이 피고인으로 법정에 섰고, 6명이 유죄 선고를 받아 복역’
1999년 간판을 바꿔 단 후 재직한 역대 국가정보원장의 이력이다. 전 정부의 박지원?서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탈북 어민 북송 사건’으로 각각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정권 교체기마다 피고인으로 재판을 받은 국정원장의 잔혹사가 이번에도 재현될 전망이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박지원?서훈 전 원장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이희동 부장검사)와 공공수사3부(이준범 부장검사)에 각각 배당하며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은 이들 혐의를 뒷받침할 증거 확보를 위해 조만간 국정원과 국방부 등을 압수수색할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이 자체 조사를 거쳐 전직 수장을 직접 고발했다. 군 당국도 내부 조사를 진행 중인 만큼 검찰의 수사 과정은 그 어느 때보다 순조로울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이 이번 사건을 ‘중대 국가 범죄’로 보고 있고, 국정원과 군 당국?검찰이 사실상 한 몸처럼 움직이며 전 정부를 겨냥한 만큼 두 전직 원장의 기소는 예견된 결과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들을 고리로 전 정부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까지 줄줄이 사법처리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박 전 원장은 2020년 9월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 씨가 서해상에서 북한군에 피살됐을 때 첩보 관련 보고서 등을 무단 삭제한 혐의(국가정보원법상 직권남용,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를 받는다.
국정원 직원이 첩보 등을 토대로 이씨가 자진 월북한 것이 아니라 표류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이 담긴 내부 보고서를 작성했다. 국정원은 청와대 지침을 받은 박 전 원장이 이를 삭제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보고 있다.
탈북 어민 북송 사건은 2019년 11월 북한 선원 2명이 동료 16명을 살해하고 탈북해 귀순 의사를 밝혔으나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추방한 게 골자다. 서 전 원장은 이와 관련해 합동 조사를 강제 조기 종료시킨 혐의(국가정보원법상 직권남용, 허위 공문서 작성)로 고발됐다. 그는 통상 보름 또는 한 달 이상 걸리는 탈북민 합동 조사를 3~4일 만에 마무리하라고 부당 지시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의 칼날이 국정원장을 향한 사례는 이전에도 적지 않았다. 국정원으로 개칭한 출범 초기 재직한 임동원·신건 전 원장은 이른바 '삼성 X파일' 등 불법 감청을 묵인·지시한 혐의로 2005년 구속기소 됐다.
이들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형 확정 4일 만에 사면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국정원 사상 첫 내부 승진자로 조명받은 김만복 전 원장이 2011년 일본 월간지 '세카이'와의 인터뷰 등에서 기밀을 누설한 혐의로 고발당했다. 다만 검찰이 김 전 원장의 기소를 유예하면서 법정에 서지는 않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국정원장들은 이른바 ‘적폐 수사’의 표적이 되면서 줄줄이 법정에 섰다.
이명박 정부의 초대 국정원장인 김성호 전 원장은 이 전 대통령에게 특수활동비 4억원을 전달한 혐의로 불구속기소 됐다. 1심과 2심에서 모두 무죄가 났고 대법원 판단만 남았다.
후임자인 원세훈 전 원장은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의 주동자로 지목돼 재판에 넘겨졌고,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이 사건으로 재판받는 도중 청와대 측에 특활비를 건넨 혐의 등으로 추가 기소돼 징역 9년을 별도로 선고받았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원장들도 ‘적폐 수사’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초대 국정원장인 남재준 전 원장을 시작으로 이병기·이병호 전 원장 모두 박 전 대통령에게 특활비를 건넨 혐의로 기소돼 각각 징역 1년 6개월과 3년, 3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국정원으로 개칭 후 재직한 13명의 국정원장 가운데 절반 이상인 7명이 피고인으로서 법정에 섰으며, 이 중 6명이 유죄 선고를 받아 복역했다.
박지원·서훈 전 원장도 윤석열 정부 출범 2개월여 만에 자신이 이끌었던 국정원으로부터 고발당해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이들의 운명도 역대 원장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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