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7월 11일 16:16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의료 인공지능(AI) 기업 루닛이 코스닥 상장을 위해 진행한 수요예측에서 흥행에 참패했다. 국내 주식 시장 침체에도 불구하고 공모가를 높게 책정한 것이 실패의 요인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루닛은 지난 7~8일 국내외 기관 투자자를 대상으로 수요예측을 진행한 결과 7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고 11일 공시했다. 국내외 기관 162곳이 참여해 총 599만8000주를 신청했다.
참여기관의 3%인 5곳만 희망 가격(4만4000~4만9000원) 상단을 초과한 가격을 제시했고 80%(128곳)가 희망 가격보다 낮은 가격을 적어냈다. 일정 기간 주식을 팔지 않기로 약속하는 의무 보유 확약을 신청한 기관은 31곳에 불과했다.
수요예측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루닛은 공모가를 희망 가격의 하단보다 30% 낮은 3만원으로 확정했다. 상장을 주관한 NH투자증권 관계자는 "주식 시장의 위축된 투자 심리가 루닛에도 영향을 미쳤다"며 "시장 친화적인 가격으로 공모가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공모 규모는 534억~595억원에서 365억원으로 줄어들게 됐다. 상장 후 시가총액은 3886억원이다. 당초 희망공모가 상단 기준 시가총액은 6400억원이었으나 시장에서 40% 수준의 몸값을 인정받게 됐다.
증권가는 루닛이 주식 시장 분위기를 고려하지 않고 공모가를 지나치게 높게 책정했다고 지적한다. 루닛은 적자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흑자를 내는 비교기업들의 평균 주가수익비율(PER)을 적용해 기업가치를 산정했다.
주관사인 NH투자증권은 루닛의 비교기업으로 셀바스에이아이, 비트컴퓨터, 트윔 3곳을 선정하고 이들의 평균 주가수익비율(PER) 34.82배를 적용해 기업가치를 1조300억원으로 평가했다. 비교기업 중 한 곳인 트윔은 AI 기반 스마트팩토리 검사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회사로 PER이 46.53배다.
트윔은 의료 분야와 관련된 사업을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AI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비교기업군에 포함됐다. 루닛과 사업 영역이 유사한 의료 AI 기업인 뷰노와 제이엘케이는 영업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어 최종 비교기업군에서 제외됐다.
지난해 상장한 뷰노는 골 연령, 안저질환, 흉부 엑스레이 등 의료영상 기반 진단 보조 솔루션을 개발하는 회사로 시가총액은 900억원대에 형성돼있다. 상장 시 공모가 기준 시가총액은 약 2300억원이었으나 절반 이하로 줄었다. 제이엘케이는 뇌 MR 영상 기반 뇌경색 진단 보조 소프트웨어를 비롯해 흉부, 전립선 등 방사선 영상의 정량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회사로, 현재 시가총액은 약 700억원대다. 최근 국내 의료 AI 기업들의 주가가 부진한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상장 후 유통 물량도 많다는 점도 흥행에 발목을 잡았다고 보고 있다. 루닛의 상장 예정인 보통주식수 1050만7767주 중 약 44.2%(우선주 포함 38.28%)가 상장 직후 유통 가능 물량이다. 상장일 차익 실현 물량이 쏟아져나온다면 주가가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
주식매수선택권 행사에 따른 주가 희석 위험도 있다. 루닛의 미행사 주식매수선택권은 806만943주로 상장 예정 보통주식수 기준 7.68%에 달한다. 이 중 행사 기간이 도래해 행사할 수 있는 주식매수선택권은 44만5315주로 4%가량이다. 상장 후 주식매수선택권이 행사될 경우 상장 주식 수가 증가해 주식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 상장 한 달 후 의무보유기간이 끝난 벤처투자기관의 물량 202만주(16.67%)의 나올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업계는 루닛이 당분간 적자를 이어갈 수밖에 없다는 점도 주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루닛은 올해 매출이 207억원으로 전년 대비 3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영업손실은 475억원으로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흑자 전환은 2024년부터 가능할 전망이다.
루닛은 오는 12~13일 일반 투자자 대상 청약을 거쳐 21일 코스닥시장에 상장할 예정이다. 상장 주관사는 NH투자증권이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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