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민 칼럼] 왜 일본과 관계개선 해야 하는가

입력 2022-07-11 17:22   수정 2022-07-12 00:06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피격 소식을 접하자마자 대부분 한국인은 자연스럽게 이 생각을 떠올렸다. ‘혹시?’ 그렇다. 범인이 재일동포와 같은 한국계가 아닌지 하는 염려였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반일 감정, 특히나 아베에 대한 반감이 그런 개연성과 관련한 의문을 불러왔다. 그동안의 ‘피해-가해’의 한·일 관계가 단번에 뒤바뀌는 최악의 상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베는 유달리 한국에 적이 많은 정치인이었다. 일본 보수 우익을 대변하는 그의 발언과 정치적 결정은 꽤나 자극적이었다. 위안부 할머니에게 사과 편지를 쓸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 “털끝만큼도 없다”고 한 것이나, “침략의 정의는 역사가들에게 일임해야 한다”는 등의 말이 큰 반발을 샀다. 한국 대법원의 징용공 배상 확정판결 이후 반도체 부품 수출 규제와 백색 국가(화이트 리스트) 제외 등의 조치도 한·일 관계를 한층 더 냉각시킨 요인이 됐다.

아베 전 총리의 너무나도 돌연한 죽음에 조의를 표하는 것과 별개로 ‘포스트 아베(安倍)’ 시대 한·일 관계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향후 한·일 관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추측이 무성하다. 이번 일본 참의원 선거 결과에서 보듯 개헌 세력의 득세와 더불어 ‘조기 개헌론’이 힘을 받아 한·일 관계가 더 경색할 것이란 전망이 있다. 반대로 전후 일본 최장인 4년8개월간 외무상을 지낸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상대적으로 유연한 외교적 태도에 비춰볼 때 점진적으로 개선될 것이란 기대도 없지 않다. 현 상황에서 불투명한 앞날을 예측하는 것보다는 그동안 우리가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미래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우리는 일본과의 관계에서 사실(史實)보다는 감정과 그에 따른 선택적 인식에 좌우되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현재 한·일 관계의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는 징용공 문제를 촉발한 것은 1965년 양국간 국교 정상화로 북한이 한·일에 포위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조총련계 역사학자가 일본 좌익 계열 출판사를 통해 낸 《조선인 강제 연행의 기록》이라는 선전·선동용 책이다. “일제가 잔혹하게 조선인을 착취했다”고 선동하기 위해 동원 방식, 작업 배치, 임금 등 처우 조건 등에서 광범위한 왜곡이 이뤄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친일 프레임’의 도구로 쓰이는 한·일 기본조약 및 대일 청구권 협정에 대해서도 사실에 기초한 인식이 필요하다. 국제 조약상 식민 관계에서는 배상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필두로 △그럼에도 일본에 반출된 한국 자산에 비해서도 일본의 제공 자금이 훨씬 컸다는 점 △당시 국가 예산 등과 견주어 천문학적인 금액을 받아 경제 발전의 핵심 인프라를 구축했다는 점 등이 도외시되고 있다. 물론 일부 징용공의 개인적 고통에 대한 보상이 미비했던 측면도 있으나, 이를 한국 대법원 판결처럼 일본 기업에 책임을 지우는 것이 합당한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한·일 청구권 협정의 취지로 볼 때는 한국 정부 차원에서 해결했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왜 일본과 관계 개선을 해야 하는가? 사이좋게 지내야 할 이웃이기 때문인가? 아니다. 현 국제 정세상 우리는 일본과 손을 맞잡아야 우리의 안위를 가장 잘 보장받을 수 있는 구조에 놓여 있다. 북한과 중국이라는 핵보유국에 둘러싸여 있는 우리 주변에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 존중이라는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는 나라는 일본밖에 없다. 일본에는 한반도 유사시 병력과 탄환 등을 지원하는 유엔군사령부 후방 기지도 7곳 있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 으르렁거릴 때, 웃고 있는 나라는 북한과 중국이다. 한·일 관계는 미래와 국제 정세로 시공간을 확대해 생각해야 한다. 징용공 배상 문제도 감정적 접근이 아니라 사실과 실리에 기초한 국민적 공감대가 이뤄져야 정치적 해법이 의미를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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