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수원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A씨(60)는 올해 5월로 국민연금 의무가입 기간이 끝났지만 여전히 자발적으로 국민연금 보험료를 추가 납입하고 있었다. '임의계속가입' 제도를 통해 보험료를 더 내면 추후 경제활동을 중단했을 때 보다 많은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A씨는 최근 국민연금 추가 납입을 중단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정부가 지난달 건강보험료 피부양자 유지 조건을 강화하는 바람에 연금 몇만원 더 받으려다 내지 않아도 될 건강보험료를 매달 10만원 넘게 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A씨는 "장기적으로 건보료는 계속 오를 수밖에 없을 텐데 굳이 국민연금을 많이 받을 이유가 없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A씨처럼 건보료가 두려워 국민연금 납입을 중단하는 사례가 발생하는 이유는 오는 9월부터 건보료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하기 위한 소득 요건이 강화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공적연금을 포함해 소득이 연 3400만원을 넘지 않으면 건보료를 한 푼도 내지 않고도 건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피부양자로 분류됐다. 하지만 9월부터는 전년도 연간 소득이 2000만원을 초과할 경우 피부양자 자격이 박탈된다.
이에 따라 지난해 평균 월 소득이 166만6666원을 넘는 경우엔 오는 9월부터 피부양자 자격을 잃게 된다. 지금까지 월 소득액이 283만3333원을 넘어야 건보료를 내야 했던 것에 비하면 월소득 기준이 116만7000원가량 강화된 셈이다.
피부양자 유지 조건이 강화됨에 따라 공적연금을 받고 생활하는 일부 계층의 건보료 부담은 다소 커질 전망이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월 160만원 이상 200만원 미만의 국민연금을 받는 수급자는 지난 3월 기준 6만9277명으로 집계됐다. 월 200만원 이상 국민연금을 받는 수급자는 2994명이다.
정부는 피부양자 인정 기준 강화로 인해 건보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는 피부양자가 총 27만3000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들의 건보료 부담은 평균적으로 약 14만9000원으로 추산된다. 국민연금 수급자 B씨(67)는 "아파트 한 채 외엔 가진 것 없는 노인에게 월 15만원의 추가 비용은 생활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정도로 큰 금액"이라고 했다.
다만 정부는 이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올해 9월부터 내년 8월까지의 1년차엔 새로 부과되는 건보료 부담의 80%를 감면해주기로 했다. 이에 피부양자 자격 상실자의 1년차 건보료 부담은 월 3만원 정도에 그칠 전망이다. 2년차엔 감면율이 60%로 떨어지고, 3년차는 40%, 4년차는 20%, 5년차엔 0%로 줄어든다.
정부가 노령층의 반발을 무릅쓰고 건보 피부양자 기준을 강화한 이유는 부담능력에 따라 건보 보험료를 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다. 직장인은 극빈층이라도 소득이 있다면 무조건 건보료를 꼬박꼬박 내는데, 은퇴했다는 이유만으로 건보료를 내지 않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2000만원으로 강화한 소득 기준이 여전히 은퇴자에 대한 지나친 특혜라는 지적도 나온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독일의 경우 연 소득이 약 720만원을 넘으면 건보료를 반드시 내야 하고, 일본 역시 약 1278만원으로 한국보다 피부양자 유지 조건이 까다롭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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