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육지책인 셈이다. 김 씨는 “올 초까지 한 박스(4㎏)에 2만원 안팎이던 상추 값이 10만원을 넘어섰다”며 “추가로 채소나 반찬을 요청할 때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정도다. 따로 상추를 여러 번 달라는 고객에게는 차마 못 준다는 말을 할 수 없어 ‘재고가 다 떨어졌다’고 사과하곤 했다”고 말했다.
전반적 물가가 뛰는 데다 폭염과 장마까지 이어지면서 폭등한 채솟값에 자영업자들이 고민에 휩싸였다. 식당가에선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이 퍼지는 추세다. 슈링크플레이션이란 슈링크(shrink·줄이다)와 인플레이션(inflation·물가 상승)의 합성어로 물가 상승에 음식값을 올리는 대신 손님에게 내놓는 반찬 구성 등을 줄이거나 저렴한 품목으로 바꾸는 것을 가리킨다.
12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운영하는 농산물유통정보(KAMIS) 시스템에 따르면 적상추 소매가격은 이날 기준으로 100g당 2174원, 청상추 가격은 2250에 달했다. 평년 기준 각각 866원과 851원이었던 것에 견주면 1.5~2.5배가량 비싸다. 깻잎도 100g당 2443원으로 평년(1578원)에 견줘 50%가량 올랐다. 뿐만 아니라 양배추, 시금치, 얼갈이배추, 가시오이, 열무, 양파, 미나리, 파프리카 등 거의 모든 야채값이 고공행진 중이다.
값을 올리면 손님들 발길이 끊어질까 걱정하는 일부 자영업자들은 공짜로 나가는 반찬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을 택했다. 서울 성수동에서 샐러드 전문점을 운영하는 장모 씨(33)는 “하필 채소를 주 재료로 사용하는 식당을 운영해 매출 타격이 컸다. 그렇다고 동네 단골 고객들을 놓칠 수는 없어 가격 인상보다는 우선 음식 양을 줄이는 방식을 택했다”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의 족발집 사장 윤모 씨(35)도 “소량 구매하는 일반 가정과 상추 소비가 대량으로 이뤄지는 식당 사정은 다르다. 손님들에게 상추값이 많이 올랐다고 일일이 말하기도 쉽지 않아 내주고는 있지만 추가로 몇 번 제공하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 하소연했다.
자영업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아프니까 사장이다’ 등 온라인 카페에도 역대급 물가 급등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는 글들이 많다. 자영업자들 사이에서 “영업할수록 손해”라는 푸념이 거듭 흘러나오고 있다. 쌈채소를 푸짐하게 제공하기 힘들어 메뉴 가격 인상을 고민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장마철 후에도 한동안 채소 가격이 안정화되긴 쉽지 않아 보인다는 것. 장마가 길어지는 데다 올여름 폭염이 예상돼 농산물 수급 위험도가 높아지고 있다. 폭염이 계속된 2018년에도 잎채소를 비롯해 과일이 화상이나 병충해 피해를 입어 가격이 크게 올랐던 적이 있다. 작황 부진은 수확량 감소로 이어지는 만큼 추석 전까지 채소값이 안정화되긴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고객들도 메뉴 양과 토핑의 가짓수가 줄어들었다는 점을 체감하고 있다. 배달 음식점들의 메뉴에도 ‘채소 추가’ 항목을 생겨 ‘추가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가 늘었다. 취업준비생 박모 씨(24)는 “최근 집 근처에서 냉면을 포장했는데 평소 제공하던 단무지가 사라졌다”며 “따로 비용을 주지 않으면 반찬을 안 주고 나무젓가락도 요청할 경우에만 준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박 씨는 “식당들이 비용을 줄이려고 하는 걸 체감했다”고 덧붙였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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