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카드 없어도 일단 사자"…'후불결제 시장' 판 커진다

입력 2022-07-13 07:52   수정 2022-08-11 00:02


빅테크, 핀테크 업체들에 이어 대형 카드사까지 국내 후불결제(BNPL·buy now pay later)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후불결제란 지금 당장 돈이나 신용카드가 없어도, 신용도가 낮아도 물건을 일단 먼저 사고 나중에 계산토록 하는 서비스다. 소비 욕구는 높지만 돈은 부족한 이들에게 서비스 자체가 혁신으로 자리 잡으면서 후불결제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지속해서 늘고 있다. 동시에 일각에서는 연체 또는 다중채무 규모 확대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대카드는 이달 초 온라인 패션 쇼핑몰 무신사의 운동화 리셀 플랫폼 솔드아웃에 후불결제 서비스 '카드 없이 분할결제'를 도입했다. 국내 카드사 중 후불결제 서비스를 도입한 사례는 현대카드가 처음이다. 해당 서비스를 이용하면 신용카드가 없어도 물건을 사고 후불로 3개월간 대금을 나눠 낼 수 있다. 50만원 이하의 단일 상품을 선택한 뒤 구매 시점에 대금의 3분의 1을 결제하고, 나머지 대금은 이후 2개월간 차례로 결제하는 식이다. 할부 수수료는 없다.

서비스 대상은 현대카드를 신청하거나 이용한 이력이 없는 만 19세 이상 솔드아웃 회원이다. 현대카드 심사만 통과하면 서비스를 바로 이용할 수 있다. 현대카드는 향후 솔드아웃 내 후불결제 서비스 이용 동향을 살핀 뒤 사업 확대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KB국민카드도 올해 하반기 후불결제 서비스를 출시할 계획이다. 현재 KB국민카드 사내벤처팀 '하프하프'는 전자결제 전문 업체 다날과 후불결제 서비스 구축 및 운영을 위한 업무 제휴 계약을 체결한 상태다. 양사는 비금융정보 기반의 대안신용평가시스템(Alternative Credit Scoring System, ACSS)을 공동으로 구축할 방침이다.

대형 카드사들에 앞서 후불결제 서비스를 도입해 시장을 선도해 온 곳은 빅테크, 핀테크 업체들이다. 네이버파이낸셜은 지난해부터 월 30만원 한도의 후불결제 서비스를 시범 운영 중이다. 구체적으로는 네이버페이 결제 쇼핑 이력 등 비금융 데이터와 정보기술(IT)을 통한 대안신용평가시스템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금융위원회로부터 후불결제 서비스 기간 2년 연장을 승인받은 만큼, 자사 기술을 통한 소비자 동향 분석 과정을 거쳐 서비스 대상을 대폭 확대한다는 게 네이버파이낸셜 측 계획이다.

카카오페이도 후불결제 서비스 확대를 구상하고 있다. 소액결제 시장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후불결제 서비스를 시장에 내놓기 위해서다. 현재 카카오페이는 버스·지하철·택시 등에서 사용할 수 있는 선불 충전형 모바일 교통카드 기능의 후불결제 서비스를 일부 사용자 대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상세히는 자사가 보유 중인 금융 정보와 비금융 정보를 결합한 대안신용평가시스템을 활용해 소비자의 후불결제 한도를 산정하고 있다. 카카오페이는 소비자 동향 분석 및 안정성 검증 과정을 거쳐 교통카드 기능에서 한 단계 더 발전된 형식으로 후불결제 서비스 규모를 키운다는 방침이다.

지난 3월 후불결제 서비스를 시작한 토스는 올해 대안신용평가시스템 고도화를 추진해 사업 규모를 확대한다. 일단은 사용자 금융 정보, 결제 이력 등 비금융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대안신용평가시스템을 활용해 리스크를 최소화하겠다는 게 토스의 계획이다. 개인 신용 심사 정책은 향후 부실률 운영과 사용자 특성 분석 작업을 통해 강화한다. 소비자 동향 분석 작업을 거쳐 일부 가맹점과 사용자로 제한된 후불결제 제공 규모를 순차적으로 확대한다는 게 토스 측 계획이다.

후불결제 서비스는 이미 해외시장에서는 활성화된 영역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후불결제 시장 규모가 2025년까지 1조 달러(약 1186조원)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지난해 블록(옛 스퀘어)이 호주 애프터페이를 290억달러(약 34조원)에 사들였고, 페이팔이 일본 페이디를 27억달러(약 3조원)에 인수했다. 애플은 지난달 세계개발자콘퍼런스(WWDC)에서 애플페이를 이용해 상품을 구입할 때 대금을 6주에 걸쳐 4회 분납할 수 있는 '애플 페이 레이터'를 대대적으로 발표하면서 시장 지각 변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다만 해외시장과 국내시장의 후불결제 서비스에는 차이가 있다. 해외시장에서는 수익성 창출을 목표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시장에서는 수익성보다는 '락인(lock-in) 효과'를 기대하는 면이 크다. 해외와 달리 국내에서는 빅테크, 핀테크 업체에 대한 후불결제 한도액이 월 30만원 수준으로 책정돼 있어 수익성 강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인 탓이다. 카드사의 경우 후불결제 월 한도액 조정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우나 연체율 관리 차원에서 서비스 적용 금액을 크게 늘리기엔 무리가 있다. 현재로서는 사실상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자사 플랫폼에 계속 머무르도록 하는 방안으로 후불결제 서비스가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국내 후불결제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일각에서는 연체 또는 다중채무 규모 확대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사용 한도에 대한 총액 규제가 따로 없어서다. 현 규제에서는 한 사람이 동시에 업체 3~4곳을 이용하면 월 100만~120만원은 쉽게 후불결제로 대체할 수 있다. 대학생, 사회초년생 등 금융거래 이력이 부족해 신 파일러(thin filer)나 신용카드 발급이 어려운 고객이 서비스 주 이용자인 점을 고려하면 빠른 속도의 채무 확대와 연체율 상승을 유발할 여지가 있다.

실제 정무위원회 소속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네이버페이 후불결제 연체율은 1.26%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말 기준 신용카드 신용판매 연체율(0.54%)의 두 배를 뛰어넘는 수치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후불결제 서비스의 경우 주 이용층이 채무 상환 능력이 낮은 청년 또는 저신용자에 쏠릴 여지가 크기 때문에, 다수의 물건을 구매한 이후에 대금을 갚지 못하는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유발할 수 있다"며 "빅테크, 핀테크 업체의 경우엔 다른 금융사의 연체 정보가 공유되지 않는 문제도 남아있다. 시장이 확대됨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현상에 주의해 사업이 추진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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