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에 근무하는 30대 안모씨는 최근 인터넷을 통해 A카드사의 신용카드를 발급받으려다 자신도 모르게 리볼빙 서비스에 가입했다. 공식 홈페이지에서 발급 신청 절차를 밟던 안씨에게 상담원이 전화해 “유선으로 신청하면 더 빠르다”며 권유한 게 화근이었다. 상담원이 속사포같이 읽어주는 카드 설명서와 각종 동의 사항을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던 안씨는 전화를 끊고 휴대폰에 도착한 문자를 보고서야 자신이 약정 기간 5년 조건으로 리볼빙 신청에 동의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상담원은 이에 대해 “혹시 연체가 발생해도 신용등급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해주는 서비스”라며 “가입에 동의하시죠”라고 얼버무렸다.
영어로 ‘회전하다’는 뜻의 리볼빙은 말 그대로 카드대금의 일정 비율만 먼저 내고 나머지는 다음달로 넘기는 결제 방식이다. 당장 카드값을 내기 어려울 때 연체 낙인 없이 납부 기한을 넘길 수 있다. 그 대신 높은 이자가 매겨진다. 국내 신용카드사의 결제성 리볼빙 평균 금리는 연 14.8~18.5%다. 카드론 평균 금리(연 12.98%)보다 오히려 높다.
이런 리볼빙 잔액이 올 들어 급증하고 있다. 지난 5월 말 기준 국내 7개 전업카드사의 리볼빙 이월 잔액은 6조4165억원이었다. 올해 처음으로 6조원을 넘어섰다.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후 역대 최대 규모다. 리볼빙 급증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팍팍한 살림살이에 카드값을 갚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리볼빙을 쓰거나, 강화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로 카드론을 못 쓰게 되자 적용 예외 대상인 리볼빙을 ‘울며 겨자 먹기’로 찾는 이들도 적지 않다.
문제는 카드사들의 불완전판매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지에는 나도 모르게 리볼빙에 가입됐다거나 상담원이 고신용자만 가입할 수 있다고 해서 동의했는데 후회된다는 식의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 올 1월 B카드를 발급받았다가 리볼빙 가입 사실을 뒤늦게 알고 해지했다는 직장인 김모씨도 “마케팅 동의를 거절하고 약관을 꼼꼼히 읽었는데 어떻게 가입된 건지 아직도 모르겠다”고 했다.
금융당국이 결국 칼을 빼들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카드업계 간담회에서 “불완전판매가 없도록 자체 관리를 강화해달라”고 주문했다. 리볼빙 금리 인하를 유도하기 위해 금리 산정 내역을 공개하고 공시 주기를 1개월로 단축하는 방안을 거론하기도 했다. 사실상의 가격 인하 압박이다. 기업이 스스로 정도를 지키지 못한다면 규제만 조여드는 악순환이 거듭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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