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 점. 점.
갤러리 안이 온통 점들로 가득 차 있다. 점들은 모여 그물이 되기도 하고, 커다란 호박이 되기도 하고, 여름날 정원이 꽃이 되기도 한다. 현대미술의 거장 쿠사마 야요이(93)가 바라봤던 환영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글로벌세아그룹(회장 김웅기)이 13일 서울 대치동 본사 사옥내 갤러리 S2A(세아 투 아트)를 열고 기자들을 초청해 개관전 '쿠사마 야요이:영원한 여정'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전시는 김웅기 회장이 개인적으로 소장한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 '초록 호박'과 '6월의 정원' 2점과 함께 1970년대부터 2021년 작품까지 회화, 조각, 판화 등 총 40여점으로 구성됐다. 2013년 대구미술관에서 열었던 쿠사마 야요이의 개인전을 제외하면 국내 최대 규모의 전시다. 이 중에는 지난해 서울옥션에서 54억5000만원에 낙찰된 ‘호박(Pumpkin)’도 포함됐다.
S2A가 첫 전시로 쿠사마 야요이를 선택한 것은 김웅기 회장이 처음으로 구입한 미술작품이어서도 있지만, 동양인 여성 화가로 무시 받았던 쿠사마 야요이가 끊임 없는 작품활동과 도전을 통해 세계적인 작가로 거듭난 상징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전시 작품은 국내 개인 컬렉터들이 무상으로 대여해 마련됐다.
'역대 여성 작가 경매가 1위' 등 수식어가 붙는 쿠사마 야요이는 종자사업을 하는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자랐다. 10살 무렵부터 환영에 시달렸고, 물방울과 그물무늬에 심취했다. 1952년 일본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술뿐 아니라 시도 쓰고, 배우, 아트딜러도 했다. 1977년 스스로 정신병원에 갖혀 잊혀졌던 그는 1990년대에 화려하게 부활해 작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하이라이트는 전시장 한가운데에 위치한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1995)이다. 쿠사마 야요이가 1995년에 그린 100호 사이즈의 그림은 단 3점 뿐이다. 이 작품의 보험가액만 200억에 달한다. 작품의 특징은 점에 있다. 기존 작품들은 노란색 형태의 호박안에 검은색 점을 그려넣었지만, 이 작품은 반대로 검은 형태의 호박안에 노란색 점을 그려 넣었다.
거래액 기준 최고가 작품도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옥션에서 54억5000만원에 거래된 '호박'(1981)이다. 50호 사이즈의 이 그림은 쿠사마 야요이의 초기 작품으로 형태가 최근 작품과 비교해 찌그러져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검은 점들의 형태가 경계가 모호하게 펼쳐진 이 작품은 무한의 연결성을 표현했다.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 가격은 매년 우상향을 한다. 사이즈가 크고, 연대가 오래 된 작품일수록 프리미엄이 붙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고령인 점도 작품 가격 급등에 한몫한다.
가장 최근작품은 높이 127㎝에 무게 150㎏을 자랑하는 '반짝이는 호박'(2021) 조각이다. 쿠사마 야요이는 기존의 점과 망의 형태를 넘어 거울을 이용해 작품의 무한한 확장을 실험했다. 그는 섬유강화 플라스틱(FRP)으로 만든 호박 조각의 겉면에 반짝이는 모자이크 타일을 붙여 2차원의 호박을 3차원의 현실세계로 소환했다. 최근 크리스티 경매에서 이 작품보다 큰 금색 호박 작품이 50억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전시의 절반(20여 작품)을 차지한 판화들도 눈에 띈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해 젊은 컬렉터들의 거래가 활발하다. 판화작품을 감상하는 팁이 있다. 쿠사마 야요이의 판화 주변에 색깔이 다른 콜라주 테두리가 있는 작품들은 프리미엄 작품으로 테두리가 없는 작품에 비해 평균 20% 이상 비싸다. 작품 밑부분에는 쿠사마 야요이가 연필로 자신의 서명과 작품의 숫자를 표시해 뒀다. 예를 들어 49/50는 이 작품은 전 세계에 50개가 있고, 이 작품은 그 중 49번째 작품이라는 것.
패션 회사로 시작한 세아 그룹의 의미를 담아 쿠사마 야요이가 1970년대에 만든 조각도 선보였다. 뉴욕에 진출한 그는 동양인 여성에 대한 무시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작품은 브론즈를 이용해 만든 천 조각 '신발'이다. 그는 남근을 상징하는 모습의 구두를 천의 모양으로 만들어 남성중심 화랑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쿠사마 야요이 전시는 7월15~9월14일까지 일반에 무료로 공개된다.
한편, 갤러리 S2A의 다음 전시는 박서보, 이건용, 이우환, 조용익, 하종현 등 단색화 거장들의 전시다. 가장 화제를 모았던 김환기 작품 '우주'는 올해중 공개 예정이다.
방준식 기자 silv000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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