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기업활동을 지나치게 저해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형벌규정을 대대적으로 손 본다. 문재인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로 추진된 ‘공정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을 비롯해 중대재해처벌법, 국제노동기구(ILO) 관련법 등이 ‘손질 대상’이 될 전망이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시도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는 국회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진 미지수다.
정부는 지난 6월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경제형벌에 대한 행정제재 전환과 형량 합리화를 골자로 한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이후 부처별로 소관 법률사항을 전수조사하고 전경련, 경총, 대한상의 등 경제단체를 중심으로한 기업계, 민간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경제 형벌규정을 파악했다. TF는 기업활동의 불안·애로를 늘린 법안으로 공정경제 3법과 중대재해처벌법, 국제노동기구(ILO) 관련법 등을 예로 들었다.
TF는 형벌규정 개선의 큰 방향을 ‘비범죄화’와 ‘형량 합리화’로 잡았다. 정부에 따르면 비범죄화는 국민의 생명·안전이나 범죄와 관련 없는 단순한 행정상 의무·명령 위반에 대한 형벌은 삭제하거나 행정제재로 전환하는 것을 말한다. 경미한 법 위반 행위에 대해선 징역형, 벌금형 등 형벌 조항을 삭제하거나 과태료 등 행정제재로 바꾸겠다는 의미다. TF는 서류 작성·비치 의무를 위반한 행위, 폭행 등 불법행위를 수반하지 않고 단순히 행정조사를 거부한 행위 등에 대한 형벌 규정이 비범죄화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형벌 필요성이 인정되더라도 보충성(행정제재 먼저, 형벌은 최후수단)과 비례성(위법행위와 처벌 간 균형)등 원칙에 따라 형량을 완화하거나 차별화하는 형량 합리화도 추진한다. TF는 예비·음모에 대해서는 처벌하지 않거나 감경해 처벌하고, 기업활동과 관련해 사망이나 상해가 있으면 상해는 감형하는 등 형벌을 차등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민의 생명·안전과 무관한 경우 범죄 경중에 따라 징역형이 아닌 벌금형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도입하는 것도 예시로 들었다.
TF는 이날 회의 관련 자료에서 “경제법령상 과도한 형벌조항들은 민간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키고 우리나라의 상대적 투자 매력도를 저하시키는 등 부작용을 초래해왔다”며 “민간중심 역동 경제로의 전환을 위해 우리 기업들의 자유·창의를 가로막는 범부처 경제 형벌 규정에 대한 일제 점검·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작년 11월 16개 부처 소관 경제법률 301개를 전수 분석한 결과 형사처벌(징역 또는 벌금) 항목이 6568개에 달했다. 전체 처벌항목(6568개) 6044개(92.0%)는 법 위반자와 기업을 동시에 처벌할 수 있는 규정으로, 징역, 과태료, 과징금 등 여러 처벌·제재수단을 중복으로 부과할 수 있는 항목도 2376개(36.2%)에 달했다.
유환익 전경련 산업본부장은 “정부가 그간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경제형벌 개선에 나서는 것에 대해 경제계는 적극 환영한다”며 “향후 본격 논의 과정에서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키고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형사처벌 규정이 현실에 맞게 적극적으로 개선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8월까지 부처별 개선안을 마련한뒤 TF 실무회의를 거쳐 연중 순차적으로 개선안을 상정해 확정할 계획이다. 개선안이 마련된 형벌규정은 관련 법 개정작업을 추진한다. 하지만 전 정부 역점 법안인 공정경제3법,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에 과반수가 넘는 의석을 갖고 있는 민주당이 찬성표를 던질 가능성이 적어 계획한만큼 형벌규정을 줄이긴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