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모바일 앱을 통해 비상장 주식을 사고 팔던 개인들에게 당황스러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느닷없이 매매 대상 종목이 확 줄어든 것입니다. 금융당국이 비상장 주식 거래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강화한 영향입니다.
비상장 주식 거래 플랫폼을 운영하는 회사들에게는 '날벼락'이나 다름 없습니다. 금융당국은 왜 갑자기 이런 규제의 칼을 꺼냈을까요. 개인들의 비상장 주식 매매는 요원해지는 것일까요. 한경 긱스(Geeks)가 이슈를 해부해봅니다.
'해당 종목은 전문투자자일 경우 거래할 수 있습니다. 전문투자자로 인증하시겠습니까?'
비상장 주식 거래 플랫폼 '증권플러스 비상장'에서 토스(비바퍼블리카) 주식을 매수하려고 클릭하면 뜨는 화면이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누구나 쉽게 해당 종목 화면으로 들어가 주식을 사고팔 수 있었던 것과는 달라졌다. 이달부터 일반투자자는 더 이상 증권플러스 비상장에서 토스 주식을 살 수 없다. 정부가 투자자 보호를 위해 공시 의무 등 강화된 조건을 내걸면서 플랫폼 등록에 동의하지 않은 회사들은 거래 대상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토스, 컬리, 쏘카 등이다. 야놀자 등 일부 종목은 여전히 일반투자자 거래가 허용되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투자 가능 종목 456개→50개, 무슨 일?
두나무가 운영하는 증권플러스 비상장은 13일 보도자료를 내고 "투자자 보호를 위한 거래 가능 종목 제한 및 정책 변경사항을 적용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456개였던 투자 가능 종목은 50개로 줄었다. 기존의 10분의 1 수준이다.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던 주요 유명 비상장 스타트업 중에선 토스, 컬리, 쏘카 등이 빠졌다. 또 다른 비상장 거래 플랫폼인 '서울거래 비상장(운영사 피에스엑스)' 역시 투자 가능 종목이 기존 174개에서 24개로 대폭 축소됐다. 케이뱅크, 두나무, 바이오엑스, OCI스페셜티 등 대표 종목 옆에는 '전문'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일반투자자가 아닌 전문투자자만 이들 종목을 매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주요 종목들의 거래가 사실상 제한되면서 '개점 휴업' 상황이 된 셈이다.
이 두 플랫폼은 지난 2020년 금융위원회의 혁신금융사업자로 지정받아 비상장 주식 거래 중개에 나섰던 곳들이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금융투자업 인가를 받거나 등록하지 않고는 금융투자업자의 본질적 업무를 위탁받는 행위를 할 수 없지만, 정부가 이들 플랫폼의 혁신성을 일부 인정해 특례를 부여한 것이다. 두나무는 삼성증권과 손잡고 ‘증권플러스 비상장’을, 피에스엑스는 신한금융투자와 ‘서울거래 비상장’ 플랫폼을 출시했다. 플랫폼이 거래를 중개하고, 그 내역을 증권사에 전달하면 증권사가 결제하는 구조다.
이달부터 두 플랫폼에서 거래 허용 종목이 대폭 줄어든 건 금융위가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을 2년 연장하면서 투자자 보호장치 마련을 조건으로 걸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업회생절차에 따라 무상소각된 이스타항공 비상장 주식이 2주 넘게 비상장 거래 플랫폼에서 거래됐던 사례가 문제가 됐다. 이번 규제 강화에 따라 해당 플랫폼에서 비상장 주식 거래가 가능한 회사 기준이 높아졌다. 비상장 기업은 공시 담당자 1명을 지정해 주요 공시를 해야 한다. 플랫폼 역시 정기 공시서류 미제출 기업을 공표하고 불성실 공시법인 지정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주요 스타트업들이 등록에 동의하지 않거나 강화된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면서 거래 종목에서 대거 빠진 것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비상장 기업들 입장에서는 공시 담당자까지 따로 두면서 주식을 유통할 이유가 크게 없다"고 했다. 상장 예정인 회사 입장에선 비상장 주식 가격이 공모가를 확정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부담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컬리 관계자는 "상장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비상장 거래가 많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며 "크게 (플랫폼 등록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했다.
문턱 높인 금융위의 생각은
금융위는 투자자 보호와 건전한 비상장 거래 시장 조성을 위해 기본적인 공시 의무 등 부가조건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투자자 보호가 안 된다면 비상장 주식을 상장 주식처럼 거래하게 만들겠다는 플랫폼의 야심 자체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이수영 금융위 자본시장과장과의 일문일답. -비상장 주식 플랫폼 거래를 위한 조건이 강화됐다.
"비상장 거래 플랫폼의 혁신성을 인정해 2년 동안 혁신금융서비스로 운영을 해봤는데 최소한의 정보 공시가 안 돼서 생기는 문제점이 있었다. 비상장 기업들이 아무런 정보도 공개 안 하고, 공시도 없는 것에 대해 혁신위원회 심사과정에서 문제가 제기됐다. 그래서 플랫폼에 주식 발행기업에 대한 공시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하고, 거래종목 등록·퇴출제도를 운영하도록 했다."
-기업정보 공개를 부담스러워 하는 비상장 기업들이 많은데.
"그건 플랫폼이 설득할 일이라고 본다. 최소한의 정보공시, 즉 사업이 이렇고, 돈을 벌었는지 아니면 까먹었는지 등에 대한 부분을 공시를 하는 게 부담이 된다면 플랫폼 측에서 '너희 회사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위해 공시를 해달라'고 설득해야 한다. 비상장 회사가 정보를 못 내놓겠다고 한다면 그건 그 기업들의 선택이다."
-규제가 강화되면 혁신금융서비스 취지가 퇴색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아무런 정보 공시가 안되는 플랫폼이 과연 혁신인가. 사기를 방지할 수 있다고 혁신으로 볼 수는 없다. 공시를 할 수 있는 기업을 최대한 많이 섭외를 해서 거래할 수 있게 해주면 그건 혁신성이라고 볼 수도 있다. 만약 플랫폼이 얘기하는 혁신이라는 게 남들한테 다 적용되는 규제를 안 해서 나오는 혁신성이라면 그건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비상장 투자 가능한 회사들이 줄었는데.
"정체가 불분명한 회사의 주식을 상장 주식처럼 거래를 시키는 게 과연 맞을까. 최소한의 정보 공시 의무를 줬는데도 불구하고 투자자 보호가 또 더 안 되게 되면 사실은 비상장 주식을 상장 주식처럼 거래한다는 그 야심 자체를 버려야 되는 단계가 올 거다."
"비상장 거래 다시 음지화될 수도"
지난해 말 기준 두 회사를 합쳐 누적 가입 고객은 77만 명, 누적 거래 규모는 7000억원에 달한다.증권플러스 비상장을 운영하는 두나무 관계자는 이번 규정 변경에 대해 "검증된 비상장 주식을 안전한 환경에서 거래할 수 있어 투자자 불안감을 줄이고 비상장 시장 신뢰도와 투명성을 제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더 다양한 비상장 기업을 거래할 수 있도록 거래가능 종목 수를 늘려나가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다만 플랫폼들 역시 내부적으론 고민이 많다. 비상장 거래가 위축될 경우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스타트업의 구주를 원활하게 유통시켜 회수 시장이 발달하고, 초기 기업에 대한 투자도 활발하게 하려는 목적이 사실 유명무실화된다는 것이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스타트업 투자는 기존에 전문투자자나 자산가들만이 투자할 수 있는 시장이었다. 플랫폼을 통해 일반 투자자 기회가 열렸던 건데 이제 다시 전문가의 영역으로 돌아가게 됐다. 스타트업 시장이 크려면 일반투자자들이 어느 정도는 흡수를 해줘야하는데 이게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비상장 주식 거래가 음지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이들 플랫폼이 등장하기 전엔 일부 주식 커뮤니티를 통해 음성적으로 매매가 이뤄지며 사기범죄가 끊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과거 비상장 주식은 38커뮤니케이션과 같은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알음알음 거래됐다. 종목명과 희망 가격, 연락처를 올리거나 브로커를 통하는 식이었다. 정보 비대칭성이 크고 거래가 투명하지 않게 이뤄진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다시 이같은 문제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다.
미국은 비상장 거래 플랫폼만 20여개
해외의 비상장 투자 시장은 어떨까. 미국엔 비상장주식 거래 플랫폼이 20여개나 된다. 대표적인 플랫폼이 실리콘밸리 엑셀러레이터 출신들이 모여 2014년 설립한 '포지 글로벌'이다. 사용자 수는 40만명, 성사시킨 비상장 거래 주식 총액은 90억달러(약 12조원)가 넘는다. 포지 글로벌은 지난 3월 나스닥에 상장하기도 했다. 카르타, 이퀴티젠, 줄리어리스트, 잔바토 등 플랫폼에서도 스타트업 주식이 거래되고 있다. 미국도 플랫폼 상 거래 종목들이 기업 정보를 공개하도록 공시 의무를 부과한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규정에 따르면 해당 종목에 대한 최신 정보가 공시되지 않을 경우 플랫폼에서 공식적인 거래를 할 수 없다. 투자자 조건은 플랫폼마다 다른데, 예를 들어 이퀴티젠은 연소득이 20만 달러 이상이거나 자산이 100만 달러가 넘는 개인 투자자만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해 미국의 장외시장 거래규모는 7130억달러(약 868조원)로 전년 4450억달러(약 543조원)에 비해 60% 증가했다. 한국의 400배 수준이다. 한국도 스타트업 자금의 조달과 회수 시장의 다변화와 건전화를 위해선 비상장 투자 시장을 잘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국내 금융업계 관계자는 "비상장 주식 거래를 활성화시켜 투자자 저변을 확대해야 스타트업 생태계가 잘 돌아갈 수 있다"며 "비상장 주식이 다시 고액자산가들만의 투자 영역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예스 or 노' 방식으로 규제를 전면 적용하기보다는 단계적 투자자 보호장치를 만드는 식의 절충안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본다"며 "요건 별로 거래액에 차등을 둔다던지 하는 방식도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참, 한가지 더
전문투자자 시장으로 돌파구 찾는 비상장 거래 플랫폼들
금융당국은 일반 투자자와 전문 투자자로 비상장주식 거래 시장 이원화를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전문투자자로 등록된 고객은 기존의 모든 비상장 기업에 대해 종목과 금액 제한 없이 거래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 투자자의 경우 거래가 불가능해진 종목들도 전문투자자를 대상으로 매도가 가능하다.
전문투자자 신청 요건은 투자경험요건과 소득·전문가·자산 요건 중 1가지 이상을 충족해야한다. 투자경험요건은 금융투자상품 잔고 최근 5년 중 1년 이상 월말 평균 잔고 5000만원 이상이다. 소득은 본인 1억원 이상 또는 부부합산 1억5000만원 이상이어야 한다. 전문가는 공인회계사, 감정평가사, 변호사, 변리사, 세무사, 투자자산운용사, 금융투자분석가, 재무위험관리사 등이다. 자산은 부부합산 거주 부동산 관련 금액을 제외한 순자산가액 5억원 이상이다.
두나무(증권플러스 비상장), 피에스엑스(서울거래 비상장) 등 비상장 주식거래 플랫폼 기업들은 개인 전문투자자들을 위한 플랫폼 마련을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비상장주식의 일반투자자 간 매매에 제약이 생기면서 전문투자 등록을 한 고액 자산가들을 위한 서비스를 별도로 마련해 경영 상 돌파구를 찾기 위한 것이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