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VC·대기업이 콕 찍었다…군침도는 '미래 고기' 시장

입력 2022-07-13 17:35   수정 2022-07-14 14:35

최근 1년간 50억원 이상 시리즈 A(사업 착수단계 투자) 투자를 받은 새내기 스타트업 명단을 보면 예년과 다른 게 있다. 정보통신기술(ICT), e커머스 등 ‘대세 업종’ 사이에 특이 업종의 스타트업이 대거 섞여 있다. 다나그린, 스페이스에프, 이노하스, 씨위드 등 대체육·배양육 기업이다.

이런 ‘미래 고기’는 그동안 국내에선 판매 허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 보니 대기업이나 투자사들이 딱히 눈여겨보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이후 분위기가 달라졌다. 싱가포르에서 세계 최초로 배양육 판매가 허용된 것을 기점으로 세계 각국이 배양육·대체육을 통한 미래 먹거리 선점 경쟁에 나서고 있다. 벤처캐피털(VC)이 유망 스타트업 투자에 줄을 섰고 CJ제일제당, 대상, 청정원 등 대형 식품기업들도 지난해부터 스타트업과의 업무 제휴를 잇달아 체결했다. 가축 사육 과정에서 나오는 탄소배출 문제가 부각된 데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식량 안보의 중요성이 커진 점도 미래 고기의 위상을 끌어올리는 데 한몫했다. 한국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올해 배양육에 대한 제조·가공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로 하는 등 논의가 활발하다.
○도축 대신 배양해 고기 만든다
대체육은 식물성·동물성 등으로 나뉘는데 현재는 식물성 대체육이 시장을 이끌고 있다. 콩 등에서 추출한 식물성 조직 단백질을 가공해 고기를 만드는 것이다. 식물성 대체육 스타트업 지구인컴퍼니는 국내 최초로 대체육을 만들어 써브웨이, 도미노피자 등에 공급했다. 바이오믹스테크는 지난해 9월 키움프라이빗에쿼티, 키움인베스트먼트 등으로부터 200억원 규모의 투자를 받았다. 대체육 분야 최대 규모여서 화제가 됐다.

실제 가축에서 세포를 추출해 배양하는 배양육 기술도 본격화되고 있다. 제조 과정은 업체별로 상이하지만 크게 동물의 줄기세포를 추출하고, 그중 근육 줄기세포를 분리한다. 이후 업체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이 줄기세포를 배양해 근육으로 만든다. 그런 뒤 근육이 커지면 ‘고기화’하는 것이다.


식물성 대체육이 이제 막 시장이 열리는 단계라면 배양육은 아직 ‘연구실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투자업계 자금이 몰려들고 있다. 콩, 식용곤충 등 다른 대체 단백질보다 신선육에 가장 가깝고 생산 속도가 빠르다는 장점 때문이다. 컨설팅 업체 AT커니는 2040년 배양육 시장이 4500억달러(약 533조원) 규모로 전체 육류 시장의 35%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20년쯤 후에는 전 세계 고깃집의 3분의 1 이상이 배양육을 팔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은 것이다.

한화솔루션, 롯데, CJ제일제당, 대상 등 대기업들은 펀드를 조성해 대체육·배양육에 투자하거나 관련 스타트업 지분을 직접 사들이고 있다. 한화솔루션은 기후 테크의 일환으로 미국의 핀레스푸드, 국내의 다나그린 등 대체육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한화솔루션 관계자는 “배양육이 탄소절감에 효과적이고 미래 성장성까지 갖고 있다”며 “기술 개발 단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꿈틀대는 K-대체육 스타트업
국내에서는 미래 고기 스타트업의 연구개발이 한창이다. 2020년 국내 최초 배양육 시식회를 연 다나그린은 배양육 지지체 기술에 주력하고 있다. 지지체는 근육세포가 근섬유로 자라기 위해 필요한 구조물이다. 김기우 다나그린 대표는 “해외 진출을 위한 싱가포르 법인을 설립 중”이라며 “이르면 2024년까지 ㎏당 150만원 정도인 가격을 3만원 수준으로 낮추는 게 목표”라고 했다.

씨위드는 해조류 성분의 배양액으로 한우 세포를 배양한다. 배양육 업체들에 배양액을 공급하는 플랫폼 업체를 꿈꾸고 있다. 배양액은 배양육 제조에 필수적이지만 가격이 비싸 상업성이 떨어진다는 문제가 있었다. 씨위드 관계자는 “안전하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해조류를 배양액으로 활용해 생산비용을 절감한다는 게 씨위드의 차별점”이라고 강조했다.

올해 초 관계자를 대상으로 시식회를 연 스페이스에프는 다짐 돈육을 주력으로 한다. 배양육 소시지와 햄버거 패티, 치킨 너겟 등 시제품을 발표했고 대상, 롯데 등 주요 기업과 협력해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가격 낮추고 덩어리육 만드는 게 관건
배양육 업체들은 △세포 증식 방식 △대량생산 △가격 절감 등을 공통과제로 하고 있다. 또 다른 핵심 과제는 ‘덩어리육’(홀 커트 미트) 제조다. 대부분 배양육 및 대체육은 기술적 문제로 덩어리가 아니라 다짐육 형태로 개발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세포가 일정 이상 두꺼워지면 산소를 흡수하지 못해 덩어리육을 만들기는 매우 어렵다”며 “향후엔 식물성 대체육으로 덩어리육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지에 따라 배양육 기술 수준이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티센바이오팜, 팡세 등이 덩어리 배양육 제조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티센바이오팜은 고깃결과 마블링을 살린 덩어리육 제조 기술을 개발했고 팡세는 바이오프린팅 기술 활용해 기존에는 어려웠던 살코기 덩어리 배양육을 만드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성준 팡세 대표는 “이달 중순 관계자를 중심으로 시식회를 열 예정”이라며 “그간 쌓은 기술력을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SG, 식량 안보에도 중요
전 세계에 100여 개의 배양육 회사가 존재하지만, 시중에 판매하는 배양육 업체는 미국 배양육 스타트업인 잇저스트 한 곳뿐이다. 2020년 12월 세계 최초로 싱가포르에서 배양육 닭고기 판매를 허가받았다. 이후 몇몇 업체도 허가받고 판매를 준비 중이다. 다나그린, 셀미트 등 국내 대체육 스타트업도 싱가포르 진출을 추진 중이다. 싱가포르뿐 아니라 이스라엘, 아랍에미리트 등 식량 자급률이 떨어지는 국가들은 정부 차원에서 대체육 등 푸드테크를 장려하고 있다. 기후 위기, 곡물 가격 상승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식량안보 문제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국내에선 식물성 대체육은 판매되지만 배양육은 관련법이나 식품 인허가 체계가 없어 판매가 불가능하다. 식약처를 중심으로 안정성 판단 기준, 인허가 체계 등을 마련하기 위해 논의 중이다.

축산업계는 국내 축산업 축소 등을 이유로 대체육·배양육 지원에 반대하고 있지만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이후 알파세대(밀레니얼의 자녀 세대)로 갈수록 ‘가치소비’가 심화하는 만큼 대체육 시장은 ‘뉴노멀’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차지은 인비저닝파트너스 상무는 “단기간에 보편화될 기술은 아니지만, 이 기술이 미래 식량이 될 거라는 믿음에 투자가 몰리고 있다”며 “육식·채식 여부가 아니라 공장식 축산에서 오는 탄소배출, 자원 낭비 등 모두가 당면한 여러 문제에 대한 지속가능한 해결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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