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상속세제는 1950년 상속세법 제정 후 현재까지 72년간 유산세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예컨대 A씨가 사망하면서 배우자와 4명의 자녀에게 10억원씩 총 50억원의 유산을 남긴 경우 현행 세법에선 약 15억원의 상속세가 부과된다. 50억원의 상속재산에서 기본공제 5억원과 배우자 공제 5억원을 뺀 40억원에 구간별 세율(그래픽 참고)을 적용한 결과다. 1인당 상속세는 약 3억원이다.
반면 유산취득세 방식을 적용하면 A씨의 배우자와 자녀가 내야 할 세금은 총 12억원이며 1인당 세 부담은 2억4000만원으로 줄어든다. 각 개인이 상속받은 10억원씩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한 결과다.
OECD 회원국 37곳 중 14곳은 아예 상속세 제도가 없다. 상속세 제도를 갖고 있는 23개국 중 유산세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 미국 영국 덴마크 등 4개국뿐이다. 한국 상속세 제도는 국제적 흐름과 동떨어져 있는 것이다. 게다가 국내 증여세도 유산취득세 방식이다. 그럼에도 상속세만 유독 유산세 방식을 따른다는 점에서 시대착오적이란 지적이 많다. 권성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유산취득세 방식이 응능부담의 원칙(담세 능력에 맞춘 과세)과 과세 형평성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상속세율도 높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프랑스(45%), 미국(40%), 영국(40%), 독일(30%) 등 주요 선진국은 한국(50%)보다 상속세율이 낮고 OECD 평균도 25%에 그친다. 게다가 한국은 기업 최대주주인 경우 가산세율이 적용돼 최고세율이 60%까지 뛴다.
경제 규모가 커졌는데도 상속·증여세 공제는 거의 늘지 않다 보니 국민의 세 부담이 커졌다. 전체 국세 대비 상속·증여세의 비중은 2010년 1.7%에서 2020년 3.7%로 높아졌다. 2020년 국세와 지방세를 더한 총조세에서 상속·증여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2.8%로 OECD 평균(0.4%)의 7배에 달했다.
기획재정부도 상속세를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전환하고 상속·증여세 공제 한도를 높여야 할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개편엔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부의 대물림’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의식해서다. 전문가들은 불공정한 부의 세습은 규제해야 하지만 경제 규모가 커지고 자산가격이 오른 만큼 합리적 수준에서 상속·증여세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실제 과거 상속·증여세는 고액 자산가만 내는 세금이었지만 지금은 자녀가 부모로부터 웬만한 서울 아파트 한 채만 물려받거나 증여받아도 상속·증여세 대상이 된다.
예컨대 1997년 시세 10억원 이상 아파트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공급면적 215㎡ 정도뿐일 만큼 드물었다. 당시 신문 시세표에 따르면 대치동 은마아파트 112㎡가 1억8000만~2억원 수준이었다. 지금은 서울의 웬만한 전용면적 84㎡ 아파트가 10억원을 넘는다.
미국은 개인의 상속·증여세 면제 한도를 2010년 100만달러에서 2015년 500만달러, 2020년 1170만달러로 계속 높였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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