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DB하이텍의 반도체 설계담당 부문이 물적분할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주가는 15% 넘게 급락했다. 코스닥 기업인 앤씨앤은 물적분할된 자회사인 넥스트칩이 상장한 뒤 20% 넘게 주가가 빠졌다. 물적분할이 대주주들에겐 '지배력을 상실하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순간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상법에서의 원칙적 분할 방법이 '인적분할'임에도 2010년부터 2021년까지 물적분할은 376번, 인적분할은 82번, 기타 분할은 24번이었다.
물적분할 자회사 상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정부 역시 칼을 빼들었다. 다만 어느 정도 수준의 보호안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15일 금융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과 금융투자협회·한국거래소·한국기업지배구조원·한국상장사협의회·자본시장연구원 등 관계 기관들은 태스크포스(TF)를 통해 물적분할 자회사 상징 시 주주보호 방안에 대한 제도변화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학계 역시 참여하고 있다. 하반기 내에는 결론을 도출하고 법 개정에 착수한다는 계획이다. 물적분할에 따른 주주보호 방안은 자본시장법과 상법을 개정해야 하는 사항이라 국회 통과가 필요하다. 현재 TF내에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오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건 '신주인수권 배정' 문제다. TF내에서 가장 첨예한 의견 대립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주인수권 배정제도란 물적분할된 자회사가 상장할 시 모회사 주주에게 자회사 주식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제도를 뜻한다. 과거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를 예를 들면 LG화학의 주주는 자동적으로 일정 비율의 LG에너지솔루션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는 셈이다. 비율로는 모회사 일반주주 20%, 우리사주 20%, 일반투자자 15%, 기관투자자 45% 정도의 수준이 고려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찬성측은 물적분할된 핵심사업은 당초 모회사 주주의 몫이므로, 자회사 지분에 직접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우선적으로 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모회사 주주에게 아무런 권리를 주지 않는건 일종의 권리침해이며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 중 하나라고도 말한다. 송민경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선임연구위원은 "모회사 주주 손실 보상하지 않고 그대로 둔다면 투자자들은 언제나 물적불안 자회사 상장에 대한 불안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며 " 미국의 경우 자회사 주식과 모회사 주식을 교환하는 방식을 사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물적분할 자회사 주식을 받을 수 있는 기준일 직전에 모회사 주식을 투기적으로 매수할 수있다는 반대 의견에 대해서도 매년 주주명부가 있기 때문에 장기투자자를 가려내는게 어렵지 않을 거란 입장이다.
반면, 반대측은 신주인수권 배정 제도가 부작용이 더 크다고 주장한다. 우선 IPO의 수요 예측· 가격 발견 기능을 떨어뜨릴 거라고 보고 있다. 상장 주관사 등은 일반 투자자 공모와 기관투자자공모 등을 통해 적정 공모가를 선정하는데, 이중 상당 부분을 모회사 주주에 대한 신주인수권으로 할애하면, 적정 가치의 공모가를 찾는 기능이 더 떨어질 거란 의미다. 송영훈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 상무는 "안그래도 현재 공모가 선정에 문제가 많다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이 제도의 의해 가격 발견 기능이 거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며 "신주우선배정은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투기적 수요를 조장할거란 주장도 있다. 자회사 지분을 받기위해 상장전 모회사 주식으로 급격히 자금이 쏠릴 수 있다는 의미다. 이봉헌 금융투자협회 자율규제본부장은 "IPO 상장 직전에 자회사 공모주를 배정 받기 위해 모회사 주식을 살거고 결국 투기적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며 "이후 IPO가 끝나면 다시 주가가 폭락하는 등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물적분할 자회사 상장시 모회사 주주에게 신주인수권이 아니라 자회사 주식을 현물로 배당해야한다는 주장도 있다. 핵심사업을 담당하는 자회사의 주인은 원래 모회사 주주이므로, 당연히 자회사 지분을 대가없이 나눠주는 것이 적절한 주주보호방안이라는 주장이다. 정준혁 서울법학대학원 교수는 "자회사 주식 현물 배당이 분할 전과 후를 가장 비슷하게 만들어줄 방안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주식매수청구권과 공시 강화, 상장심사 강화 등의 방안 등에 대해서 이견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주식매수청구권은 물적분할 자회사가 상장하는 경우 모회사 주주가 자신의 주식을 회사에게 사가도록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만약 자회사 상장 후 모회사의 주가가 폭락한다면, 상장 전 가격에 회사가 주식을 매수해가도록 할 수 있다.
소액주주의 경우 자회사 물적분할에 대한 실질적 투표권도 그 회사에 대한 처분권도 박탈되게 되는데, 그렇다면 제대로 엑시트(EXIT)할 기회라도 줘야한다는 게 찬성측의 주장이다. 미국의 일부 주나 일본의 경우에도 주식매수청구권을 도입했다.
반대측은 주식매수청구권이 도입된다 해도 기업가치가 일정이상 크게 떨어지는 등 예외적인 상황에만 적용되야한다고 주장한다. 기업이 많은 물량의 모회사 주식을 한번에 사들이게 되면 기업의 재무구조가 단기간에 크게 악화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자회사 물적분할과 상장 사실을 실행전 모회사 공시에 명확히 기재하는 방안이나, 물적분할 자회사의 상장심사를 지금보다 까다롭게 하는 방안 등도 논의되고 있다. 특히 상장심사의 경우 주주간담회 개최, 각종 주주와의 소통 등 주주보호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 상장심사를 통과시키지 않는 방안이 고려된다.
주식매수청구권과 공시·상장심사 강화에 대한 디테일한 내용은 여전히 논의 중이지만, 제도 자체는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도입 자체에 대한 TF내 의견이 어느정도 수렴된데다가, 정부여당은 물론 야당의 의견도 일치하기 때문이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전날인 14일 금융투자협회 정책세미나에서 3개 제도의 도입 추진 의사를 밝혔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주식매수청구권 등의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법·상법개정안을 이미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국회 관계자는 "현재 논의되는 정부의 주주보호안이 국회로 넘어온다면 통과 자체가 어려울 것 같지는 않다"며 "다만 야당의 경우 신주인수권 배정 등의 좀 더 적극적인 보호책을 원하고 있어, 디테일하게 정부안이 어떻게 정해지느냐에 따라 입장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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