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지난달 중순 출간되자마자 화제의 베스트셀러에 오른 《세계화의 종말이 시작됐다(The End of the World Is Just the Beginning)》에는 더욱 비관적인 미래 전망이 펼쳐진다. 에너지, 금융, 농식품, 원자재, 제조업, 군사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을 상대로 컨설팅하는 자이한은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세계화의 붕괴’가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하나의 세계가 끝나고 있고, 또 하나의 세계가 시작되고 있다’고 하는데, 여기서 하나의 세계는 ‘세계화의 세계’이고, 또 하나의 세계는 ‘탈세계화의 세계’다.
책은 1980년부터 2015년까지를 인류 역사에서 일종의 ‘일탈 기간’이었다고 평가한다. 이 기간에 인류는 풍요와 신뢰, 안정을 누렸다. 모든 것이 더 빨라졌고, 더 좋아졌고, 더 싸졌다. 저자는 이제부터 상황이 완전히 바뀔 것이라고 말한다. 모든 것이 더 느려지고, 더 나빠지고, 더 비싸질 것이라고 단언한다. 주요 선진국은 인구의 급격한 고령화로 숙련된 생산가능인구가 급감하고 있다. 기후 변화로 세계 주요 식량 생산 지역은 빠르게 사라지는 중이다.
자이한은 탈세계화가 가속화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로 미국의 리더십 부재를 꼽는다. 지난 세기 안정적인 세계화가 가능했던 이유는 세계 질서의 중심에 미국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달러는 국제화한 에너지 및 금융 시장을 뒷받침했고, 글로벌 기업은 까다로운 미국 소비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혁신 제품을 만들었다. 미국의 안보 정책은 호전적인 국가들이 살상 무기를 포기하도록 압박했다. 세계화한 세계에서 미국의 리더십은 빛을 발했다.
“모든 것은 일시적이었고, 모든 것은 이제 정말 끝났다.” 책은 미국이 그동안 기꺼이 수행해온 임무들에 대해 더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있고, 지금까지의 미국과 앞으로의 미국은 완전히 다를 것으로 예측한다. 탈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세계는 미국 독주 체제에서 벗어나 각 지역의 맹주 체제로 전환되며, 각 나라는 자국 안보를 위해 더욱 공격적인 전술에 의존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처럼 무역에 의존하는 국가가 큰 위기에 놓일 것이라는 저자의 진단은 새겨들을 만하다.
‘서로 연결된 세계’에서 ‘단절된 세계’로의 전환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지금, 이 책은 탈세계화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통찰력을 제공한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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