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이게 청춘이다

입력 2022-07-15 17:35   수정 2022-07-16 00:02

흰머리는 매년 한 움큼씩 늘어간다. 눈은 침침해져 기능 상실을 의심할 정도다. 뱃살은 나이테처럼 불어난다. 생물학적 나이는 차곡차곡 쌓여 간다. 그렇다고 내가 어른이 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버지는 물냉면을 좋아하셨다. 물냉면을 드실 때 가위로 면을 조각 내서 숟갈로 떠 드셨다. 그때마다 왜 그렇게 드시냐고 타박했다. 요즘 내가 물냉면을 먹질 못한다. 시린 이를 참으면서까지 굳이 먹어야 하나 싶어서다. 냉면이 생각날 때마다 아버지 생각이 난다. ‘그때 내가 아버지를 타박할 게 아니라 아버지의 시린 이를 챙겨드릴걸.’ 비로소 내가 인생의 나이를 먹어감을 느낀다.

이런 내가 요즘 ‘춤바람’이 났다. 춤과 관련한 TV 예능 프로그램을 챙겨 본다. ‘쇼다운’의 우승자가 결정되는 순간 종영을 아쉬워했다. ‘플라이 투 더 댄스’는 가능하면 본방을 사수하려 한다. 그 덕분에 춤의 종류는 지르박, 차차차만 있는 게 아니고 코레오, 보깅, 와킹도 있다는 걸 알았다.

‘쇼다운’은 비보잉 크루가 승패를 가르는 춤판이다. 서로 으르렁대며 거들먹거린다. 승패의 기준이야 있겠지만 내 눈으론 분간하기 어렵다. 결과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환하게 웃으며 경쟁하고, 손뼉 치며 서로를 응원한다. 비보이들은 대부분 여러 개 직업을 가진 ‘엔잡러’다. 먹고 살기 위해 춤을 추는 게 아니다. 춤을 추기 위해 다른 일을 하는 거다. 아르바이트 때문에 연습시간이 부족해서 우리 팀이 졌다고 자책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이 절로 든다.

‘플라이 투 더 댄스’는 여섯 명의 여성 춤꾼이 뉴욕 한복판에서 벌이는 댄스 버스킹이다. 그들은 뉴욕이라도 주눅 들지 않는다. 저마다 춤사위를 뽐내며 사람들과 어울린다. 10대 소녀 춤꾼 하리무에게 눈길이 간다. 떠듬거리는 영어 대신 춤사위로 소통했고, 어리숙함은 당당함과 행복함에 묻혔다.

나의 청춘은 그런 게 없었다. 내 적성이 뭔지도 몰랐고, 뭘 잘하는지도 몰랐다. 60명이 한 반에 모여 앉아 주어진 환경에 날 맞췄다. 50줄을 넘어선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들이 부럽다. 지위나 돈보다 하고 싶은 걸 하고 산다는 것, 그래서 행복하게 웃을 수 있다는 것 그게 부럽다.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매번 뜨거운 목 넘김이 생긴다. 지난 청춘을 그리워하는 나를 보면서 나이가 들어감을 느낀다.

우리 젊은이들! 공부 하나로 승부하던 옛날과 다른 환경에 있다. 직접 돈도 벌고, 자기 하고 싶은 걸 하려고 한다. ‘춤은 무슨 춤, 공부나 제대로 하지.’ 이런 생각으로 그들을 본다면 난 분명 나이 먹은 꼰대에 불과하다.

청년 취업 대책부터 꼼꼼히 봐야겠다. 청춘의 당당함과 다양함을 모두 월급쟁이로 보고 정책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물어 본다. 그들이 행복해야 한국도 행복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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