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붙잡아 지하에 '봉인'…화석연료와 슬기로운 동거

입력 2022-07-18 15:33   수정 2022-07-18 15:34

‘탄소와의 전쟁’이 시작됐다. 기후위기를 이대로 방치할 경우 인류의 생존도 담보하기 어려워진다는 위기감이 점점 더 커지는 모습이다. 세계 각국은 앞다퉈 ‘2050 넷제로’(탄소중립·탄소 순배출량이 0인 상태)를 선언하고,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해법을 찾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탄소는 모든 생명체의 기본 구성 원소로, 인류의 경제활동은 필연적으로 탄소를 배출한다. 공장을 돌려 제품을 생산하고 일상생활에 필요한 에너지를 만드는 모든 과정에서 탄소가 나온다. 탄소 순배출을 ‘제로(0)’로 만드는 것이 불가능한 과제처럼 보이는 배경이다. 탄소 배출 자체를 막을 수 없다면 배출된 탄소를 제거하거나 필요한 곳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면 어떨까.
‘넷제로’ 달성을 위한 현실적 대안
탄소 포집·저장·활용 기술을 뜻하는 CCUS은 ‘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의 약자다. 산업 공정이나 발전소 등에서 발생하는 CO2를 포집(capture)한 후 압축·수송 과정을 거쳐 지중에 저장(storage)하거나 유용한 물질로 활용(utilization)하는 기술을 말한다. 포집한 탄소를 ‘저장’하는 기술을 CCS, ‘활용’하는 기술을 CCU로 구분해 부르기도 한다.

탄소 포집은 흡수제나 분리막 등 특수장치를 이용해 CO2를 회수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포집한 CO2는 대염수층이나 고갈된 유전, 가스전 등 육·해상의 지하 깊은 곳에 주입해 별도 격리한다. 최근엔 CO2를 격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 용도로 활용하는 방안도 주목받는다. CO2를 화학제품, 건설 자재 등 산업 재료로 활용해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시도다.



CCUS 기술이 떠오르는 것은 CO2를 ‘인류의 적’이 아닌 ‘친구’로 바꿔주는 ‘꿈의 기술’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넷제로 추진을 위한 핵심 수단으로 주로 제시된 것은 에너지 전환이다. 화석연료 대신 탄소 배출이 없는 친환경에너지를 기반으로 경제구조를 다시 짜자는 내용이다. 하지만 재생에너지가 기존의 화석연료를 100% 대체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투자와 기술 성숙을 위한 시간이 더 필요하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분위기 달라져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가 촉발한 에너지 위기는 화석연료의 시대가 당분간 지속되리라는 것을 예고하고 있다. 에너지 안보가 주요 화두로 떠오르며 주요국들은 친환경 에너지 확대 대신 석유·가스 자원의 안정적인 공급을 목표로 정책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하지만 기후위기 문제 앞에서 화석연료로의 회귀를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에너지 수급의 안정성을 확보하면서도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묘안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CCUS는 화석연료 사용을 지속하면서도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힌다. 현재 세계 CO2 배출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발전 시설과 중공업 공장의 CO2 배출량을 줄일 수 있어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2020년 에너지 기술 전망 보고서에서 “CCUS 기술 없이 넷제로 달성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IEA는 2070년 글로벌 탄소중립 추진 시 세계 CO2 감축량의 15%는 CCUS 기술이 담당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한 한국 정부도 CCUS 기술을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달성을 위한 핵심 기술로 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5월 관계부처 합동 CCUS 제도 기반 구축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하는 등 연구개발(R&D) 지원 및 제도 기반 마련을 통해 CCUS 기술을 탄소중립 대응을 위한 에너지 신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여러 차례 밝혔다.
SK E&S, 해상 가스전을 탄소 저장고로…롯데케미칼·포스코, 탄소 활용 추진
CCUS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핵심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새롭게 등장한 기술은 아니다. 탄소 포집은 천연가스를 채굴할 때 순도를 높이기 위해 불순물인 CO2를 제거하는 기술 중 하나로, 이미 1930년 이전부터 상용화됐다. 탄소 저장 역시 CO2를 석유가스전에 주입해 생산성을 높이는 ‘EOR’의 형태로 1970년대부터 미국 등에서 상업 가동돼 온 긴 역사를 갖고 있다.

CCS 분야 연구기관인 글로벌CCS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세계에서 상업 운영 중인 CCS 프로젝트는 27개이며 CO2 처리용량은 연간 약 3600만t 규모에 달한다. CCS 기술이 이미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활용돼 온 만큼 업계 전문가들은 기술적 요소보다는 향후 사업자들과 정부 당국 간 유기적 협력이 CCUS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6월 유럽연합(EU) CCUS 정책 담당자와 에너지기업 관계자들이 참석한 ‘노던라이트서밋 2022’ 행사에서도 “CCS 사업 추진에 있어 기술은 더 이상 논의의 대상이 아니며, 이젠 글로벌 탄소중립을 위해 산업 각 영역에서 CCUS 기술을 적극 도입할 수 있는 정책적 기반 마련을 위해 힘을 모을 때”라는 의견이 쏟아졌다.

노던라이트프로젝트는 최초의 국가 간 CO2 운송 및 저장사업으로, 2024년 하반기부터 유럽 전역에서 포집한 CO2를 노르웨이에 위치한 지하 지층에 주입할 예정이다. CO2의 국가 간 이동이 활성화하면 포집한 CO2를 자체적으로 묻을 곳이 부족한 국가에서도 CCS 프로젝트 추진에 탄력이 붙을 수 있다.

이 때문에 각국은 CO2 운송 및 저장소 공동 활용 사업에 더 주목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지난 4월 국가 간 CO2 이동이 가능하게 하는 내용을 담은 런던의정서 개정안 수락서를 국제해사기구(IMO) 사무국에 기탁했다.

CCUS가 탄소중립의 현실적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국내 기업들도 CCUS를 기반으로 한 저탄소 사업구조로의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표적으로 에너지기업인 SK E&S는 CCS 기술을 LNG(액화천연가스)와 수소 사업에 적용한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SK E&S는 호주 바로사 가스전에 CCS 기술을 적용해 저탄소 LNG를 생산하고, 2025년부터 국내로 도입해 블루수소 생산 등에 사용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최근 동티모르 해상에 위치한 바유운단 천연가스전을 탄소 저장고로 바꾸는 프로젝트에도 들어갔다. SK E&S는 미국 중서부 지역의 32개 옥수수 에탄올 생산설비에서 발생하는 CO2를 연간 최대 1200만t까지 포집·저장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 북미 CCS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도 울산 콤플렉스 내 수소 제조 공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회수하고, 고순도 CO2 가스를 용접과 드라이아이스 등의 용도로 공급하는 사업을 연간 30만t 규모로 확대할 계획이다. SK어스온은 2030년까지 국내 1위 민간 CCS 사업자를 목표로 서해 및 동해 지역의 CO2 저장소 후보지를 발굴하고, 호주와 동남아시아 등에서 CCS 사업 참여 및 저장소 발굴 공동연구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롯데케미칼은 여수 1공장에 CCU 파일럿 설비를 설치해 실증 운영을 마친 뒤 상업화 설계 단계에 들어갔다. CCU 설비를 통해 포집한 CO2를 포집한 뒤 전기차용 배터리의 전해액 유기용매 및 플라스틱 소재 원료로 투입하거나 외부에 드라이아이스, 반도체 세정액 원료로 판매한다는 계획이다. 포스코도 그린스틸을 생산하기 위해 수소환원제철과 CCUS 기술을 활용할 방침이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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