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컬리에 대한 시선은 극과 극을 오간다. 새벽배송에 대한 평가 하나만으로도 정황을 짐작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은 새벽배송을 발상의 전환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김슬아 컬리 대표는 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교통체증이 없는 새벽에 배송을 해 준다는 아이디어로 유통 및 물류업계에 ‘창조적 파괴’를 가져왔다. 하지만 혹자는 “새벽에까지 노동을 시켜야하나”는 의문을 내놓기도 한다. 과연 지속가능한 사업 모델이냐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이다.
컬리가 과연 기업공개(IPO)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냐에 관한 논쟁은 훨씬 더 치열하다. 한쪽에선 거의 저주에 가까운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설립 이래 한 번도 적자를 면하지 못한 기업의 상장은 요즘과 같은 ‘베어 마켓(Bear's market)’에선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컬리와 함께 국내 e커머스의 1순위 상장 후보로 꼽히는 SSG닷컴이 내년으로 상장을 미룬 것도 외부 환경이 녹록치 않아서다.
왜 컬리만 유독 도마위의 생선처럼 적나라한 평가들에 시달려야 하는 것일까. 표면적으로는 대외 커뮤니케이션의 문제가 거론되곤 한다. 김슬아 대표의 진정성과 컬리의 혁신을 제대로 알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올 초에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총괄하는 임원이 교체된 바 있다.
일각에선 김슬아라는 여성 기업인에 대한 질투와 편견이 암암리에 작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유통업계는 전형적인 남초(男超) 사회다. 이마트와 롯데쇼핑 현대백화점 등 국내 주요 유통 기업에서 여성 CEO는 단 한 명도 배출되지 않았다. 현재 유통업계 여성 CEO는 김슬아 대표 외에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 정도다.
코스트코 출신의 임일순 대표가 2020년까지 홈플러스 대표를 역임했는데 이마저도 대형마트 업계에선 희귀 사례로 꼽힌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유통업의 핵심은 납품사와의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와 점포를 어디에 만드냐이다”며 “대부분 관계 지향형 사업이다보니 남성이 우위를 점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남성이 지배하는 유통업은 공급자 관점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유통업체는 MD라고 불리는 상품 기획자들이 매대를 통제한다. 어떤 상품을 어느 곳에 얼마나 가져다 놓을 지를 결정한다. 소비자는 매대를 돌며 그들이 정해 놓은 동선을 따라 물건을 고르는 게 국내 유통업의 오랜 공식이다. 이에 비해 마켓컬리는 실제 장을 보는 여성의 심정을 반영하는데 집중한다. 실소비자인 여성의 시각에서 상품을 소싱하고 판매한다는 얘기다. 쿠팡이 리테일 책임자(부사장)에 여성 임원을 앉힌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컬리가 새벽배송으로 파란을 일으키던 무렵, e커머스 업계에 회자된 얘기가 하나 있다. 쿠팡에 몸담았던 전직 임원들 몇몇의 ‘증언’이다. 롯데나 이마트, CJ대한통운 등 기존 유통·물류업계의 대기업들을 만만한 상대로 보던 김범석 쿠팡 창업자(쿠팡Inc 대표)가 유독 마켓컬리에 대해서만큼은 “추격을 허용하면 안된다”고 엄명을 내렸다는 것이다. KBS(김범석의 사내 별칭)의 지시 때문인 지 쿠팡은 새벽배송에 ‘올인’하다시피 했다. 새벽배송을 금지한 대형마트 규제도 조만간 풀릴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컬리의 배송 경쟁력은 더 이상 룬샷일 수 없다.
시련은 강철을 더 단련시킨다고 했다. 김슬아 대표와 컬리는 아무도 쫓아올 수 없는 혁신을 만들어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컬리가 ‘없는 살림’에 록야라는 농산물 유통업체에 투자한 것을 주목할만 하다. 록야는 마켓컬리 제1의 납품업체다. 이마트, 쿠팡에도 납품할 정도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컬리가 록야의 최대주주에 오른 건 김슬아 대표의 지향점이 어디에 있는 지를 어느 정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B2C를 넘어 훨씬 더 큰 규모의 B2B 식자재 시장을 겨냥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
‘맛있는 아보카도’에서 출발한 마켓컬리는 딸기, 수박 등 제철 신선 과일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경쟁력을 쌓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대형마트 등 매장에 진열된 과일은 장시간 상온에 노출되는데다 소비자들의 손을 타기 마련”이라며 “선도 면에선 영상 10℃로 냉장고 온도를 늘 유지하는 컬리 등 e커머스의 신선물류 창고에서 바로 배송되는 과일이 훨씬 신선하다”고 말했다. 신선식품 배송박스인 컬리의 퍼플박스를 이용하는 고객은 벌써 500만명을 넘었다.
컬리가 차별화를 위해 준비 중인 또 다른 프로젝트는 해외 진출이다. 싱가포르가 첫번째 기착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도 해외 진출을 타진하면서 첫번째로 고른 곳이 싱가포르다. 대만 등 동남아시아 각지로 진출하려면 인재 확보가 우선인데 이 점에선 싱가포르가 최적지로 꼽힌다. 동남아 시장을 테스트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컬리의 ‘뉴 비전’이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 지는 미지수다. 다만, 분명한 것은 컬리가 배수의 진을 쳤다는 점이다. 전국 산지에 대형 물류센터를 곳곳에 지으며 신선 배송을 장악하려는 쿠팡 등 경쟁자가 즐비하지만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다. 컬리의 미래와 관련해 또 하나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김슬아라는 기업인의 존재다. 그는 온갖 시련을 겪으며 누구도 경험 못할 온갖 경험치를 쌓았다.
김 대표의 지분률이 5.75%(작년 말 기준)라는 것은 그의 열정을 웅변한다. 이 숫자 하나만으로 그는 상장 과실의 상당 부분을 가져 간 국내 스타트업 1세대들과는 다르다는 점을 증명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증권거래소에서 경영권 방어책을 상장 요건으로 제시했겠는가. 김 대표는 자신의 지분이 희석되는 위험을 감수하고, 컬리의 성장을 위해 계속해서 투자를 받았다. 쿠팡의 김범석 대표가 적어도 차등의결권을 통해 ‘황금주’를 보유한 것에 비하면 김슬아 대표는 회사의 성장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어디까지나 짐작이긴 하지만, 김슬아 대표가 e커머스에 빠진 건 변수에 대한 통제와 이로 인한 즉자적인 결과물에 매혹됐기 때문이지 싶다. 회귀분석을 쇼핑의 영역에 적용하는 것처럼 사업을 시작했을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비즈니스와 조직은 국가만큼이나 변화무쌍하다. 올 봄 김슬아 대표를 만났을 때 그는 스타트업을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조언을 하나 해달라고 하자 이렇게 얘기했다. “친했던 이들과 이별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젊은 혁신가로 칭송받던 초기의 김슬아와 온갖 시련을 견뎌내고 있는 지금의 김슬아는 분명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가 컬리만의 룬샷을 달성하길 기대해본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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