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가 석 달 넘게 중단된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조합과 시공사업단 사이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조합원들은 불안한 마음에 편법까지 써가며 입주권을 내놓고 있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하다.
19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시장에 나온 둔촌주공 입주권 매물이 이달 들어 120건을 넘어섰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둔촌주공 재건축 가운데 △저층 1단지 37건 △저층 2단지 25건 △고층 3단지 28건 △고층 4단지 37건 등의 127건의 매물이 시장에 나왔다.
가격도 연초보다는 낮아졌다. 올해 초 신축 전용 84㎡를 받는 조건의 매물 시세는 25억원 안팎에 형성되어 있었는데, 현재는 19억원짜리 매물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3억원 초반 이주비를 승계받으면 초기 투자금액은 15억원대까지 떨어진다.
시장에 나온 매물 대부분에는 '사정상 급매'라는 설명과 함께 '잔금 협의', '잔금 길게 가능', '입주 시 잔금', '긴 잔금 가능' 등의 조건이 붙어있다. 개인 사정상 어쩔 수 없이 매물을 저렴하게 내놨고, 구매자가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잔금 기한을 올해 12월 이후로 늦춰주겠다는 설명이다.
한 가지 예외 조항이 있다. 재건축 사업 3년 이상 지연 시 3년 이상 보유자는 매매를 통한 조합원 지위 양도가 가능하다. 2019년 12월 3일 착공한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은 오는 12월 3일이면 착공 단계에서 3년 이상 지체된 사업이 돼 거래가 가능해진다. 12월에 잔금을 줘도 된다는 의미는 현재 매매가 불가능한 입주권에 대한 계약을 미리 체결하기 위한 장치로 볼 수 있다.
가격을 낮추고 잔금 기한까지 늘렸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하다. 일단 지난 4월 15일 시공사업단이 공사를 중단하며 시장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달 초 서울시가 중재안 마련에 진척이 있다고 발표하면서 사업 정상화에 대한 기대가 되살아나는 듯 했지만, 조합이 이를 부인하며 기대가 무너졌다.
최근에는 김현철 조합장까지 사퇴를 선언하면서 사업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일단 조합장 직무 대행 체제로 전환할 예정이지만, 사업비 대출 만기도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조합은 8000억원에 달하는 신규 대출을 받아 상환하겠다고 밝혔지만, 정확한 출처나 이율을 공개하지 않으면서 시장의 외면이 깊어지고 있다는 게 현장의 평가다.
둔촌동 B 중개사무소 관계자는 "나도 매물을 내놓은 조합원"이라며 "급매 가격이 19억원까지 내려왔다. 이주비를 감안하면 초기 비용이 15억9000만원 정도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아무도 사려 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이어 "팔리지 않을 것을 알기에 매물을 내놓지 않는 조합원도 많다"며 "공사가 재개되면 헐값에라도 팔고 나가겠다는 이들이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둔촌주공 입주권 매매에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로서는 둔촌주공 재건축을 둘러싼 갈등을 빨리 종식할 뾰족한 방법이 없다"며 "지금의 저가 매수의 기회가 될 수도 있겠지만,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라는 투자원칙을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도 "일정 지연에 따라 추가 분담금이 대폭 늘어날 수 있다"며 "(시공사업단의 구상권 청구 등) 사업의 위험성이 높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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