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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핀 딜레마란?
향후 비트코인이 글로벌 기축통화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을지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경제학 용어가 있다. 바로 ‘트리핀 딜레마 (Triffin’s dilemma)’라는 개념이다. 트리핀 딜레마는 기축통화가 국제 경제에 원활히 쓰이기 위해 많이 풀리면 기축통화 발행국의 적자가 늘어나고, 반대로 기축통화 발행국이 무역 흑자를 보면 돈이 덜 풀려 국제 경제가 원활해지지 못하는 역설을 말한다. 1944년 출범한 브레턴우즈 체제하에서 미국 달러화가 처한 상황을 설명할 때 많이 거론된다.1950년대 미국에서 수년간 이어진 경상수지 적자 때문에 처음 이 개념이 등장했다. 당시 예일대 교수였던 로버트 트리핀(Robert Triffin)은 이러한 상태가 얼마나 지속될지, 또 미국이 경상흑자로 돌아서면 누가 국제 유동성을 공급할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미국이 경상 적자를 허용하지 않고 국제 유동성 공급을 중단하면 세계 경제는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하면서도 "적자 상태가 지속되어 미 달러화가 과잉 공급되면 달러화 가치가 하락해 준비자산으로서 신뢰도가 저하되고 고정환율제도(브레턴우즈 체제는 금 1온스의 가격을 35달러로 고정해 태환할 수 있게 하고, 타국의 통화는 조정 가능한 환율로 달러 교환이 가능하게 해 미 달러를 기축통화로 만들었다)가 붕괴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딜레마’라는 단어가 보여주듯,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하는 현행 국제 금융시스템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오늘날엔 달러화가 지닌 국제적 위상이 워낙 거대해졌기 때문에 트리핀 딜레마 문제가 별로 심각하게 거론되지 않는다. 미국은 실제로 1971년 닉슨 대통령에 의해 브레턴우즈 체제가 막을 내린 후 지속해서 달러 공급을 늘리면서도 기축통화의 지위를 잘 유지해왔다. 달러의 가치가 낮아지는 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달러화 자체의 수요를 증가시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1975년엔 ‘에너지 정책 보호법’을 제정하여 원유 수출을 제한하고 당시 세계 최대의 산유국이던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모든 석유 거래를 달러로만 결제한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석유를 사기 위해서는 먼저 달러가 필요했기 때문에 탄탄한 수요가 형성되었다. 또 1995년엔 ‘역 플라자 합의’를 통해 G7이 달러 가치를 함께 부양하는데 합의하며 트리핀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저물가는 다시 돌아온다
미국은 코로나 팬데믹이 발발한 이후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더욱 맘껏 활용하고 있다. 초저금리와 공격적 완화정책으로 전례 없는 규모의 돈을 풀며 코로나19가 몰고 온 경제 쇼크를 막아내고 있다. 발행량이 갑자기 많이 늘었으니 달러 가치는 약세로 돌아서야 정상이지만 덩달아 금리인하와 돈 풀기로 대응한 타 국가들의 헌신(?) 덕분에 최근 달러화 가치는 타 국가 통화 대비 오히려 강세를 띠고 있다. 이쯤 되면 미국은 굳이 트리핀 딜레마를 벗어날 필요도 없어 보인다.그러나 과연 달러 강세가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현재 달러화 강세의 가장 큰 원인은 미국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선제적으로 시행한 금리 인상과 양적 축소다. 그렇다면 미국이 다시 금리를 내리고 돈을 푸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하면 달러는 언제든지 약세로 반전될 수 있다는 뜻이고, 필자가 보기에 미국은 조만간 다시 돈을 풀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은 아무도 기억 못하겠지만 불과 3년 전만 해도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너도나도 필사적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지상 과제는 ‘저성장’과 ‘저물가’였다. 미국 연준은 10년이 넘도록 겨우 2%였던 연간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해 전전긍긍했다. 미국 경제도 일본처럼 장기 저성장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경제에 저성장과 저물가가 고착화되었던 이유는 21세기 들어 촉발된 디지털 전환이 지난 10년간 더욱 가파르게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장기적으로 상품과 서비스 가격의 하락, 즉 ‘디플레이션’을 유발한다. 지금 스마트폰을 꺼내 그 안에 어떤 기능들이 들어가 있는지 한번 살펴보라. 과거에는 사진을 찍기 위해 비싼 디지털카메라를 사야 했지만 이제 스마트폰만 있으면 공짜로 찍을 수 있다.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MP3 플레이어가 필요했지만 역시 스마트폰으로 대체되었다. 무어의 법칙(Moore’s Law)으로 인해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의 성능은 계속해서 좋아지지만, 생산비용은 상대적으로 비탄력적이다. 앞으로 계속해서 기술이 발전하고 사회 곳곳의 더 많은 영역이 디지털로 전환되면 결국 물가는 하방 압력을 받을 것이다.
탈중앙화된 기축통화가 필요한 이유
물가가 하락하고 선진국 경제의 성장이 둔화하면 각국 중앙은행들은 다시 금리를 내리고 돈을 풀어 성장을 촉진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전 세계는 더 깊은 저성장의 늪에 빠지게 된다. 고통이 심한 환자에게 모르핀을 투여하듯이,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미래 세대에게 진 빚만 더 늘어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이를 “길에 떨어진 음료수 깡통을 당장 주워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고 계속 발로 차면서 문제 해결을 뒤로 미루는 형국(Kicking the can down the road)”이라고 표현한다.현대의 신용화폐 제도와 중앙은행 시스템은 이미 오래전에 음료수 깡통을 제 손으로 직접 줍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경제 위기가 올 때마다 금리를 내리고 수조 달러의 돈을 퍼부어 문제를 봉합하는 것이 이제 유일한 해결책이 되었고 그 주기도 점점 짧아지고 있다. 만약 달러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기축통화의 지위가 흔들리면 과거처럼 선진국 정부들 간에 긴밀한 공조가 이뤄져야 할 텐데, 서로 으르렁대기 바쁜 요즘 국제정세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건 어려울 것 같다. 석유의 국제무역에서 달러만 결제 수단으로 쓰이게 만든 ‘페트로 달러’ 시스템도 달러 가치를 영원히 지켜줄 수는 없다. 에너지 영역에서도 신기술이 기존의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에너지 대전환’이 빠르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세계 경제는 투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통화정책에 따라 발행되어 ‘딜레마’에 빠지지 않는 새로운 기축통화가 필요하다. 비트코인이 달러를 완전히 대체하여 유일한 기축통화로 쓰인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브레턴우즈 체제 이후 80년간 이어져 온 달러 기반의 국제질서가 지금 큰 위험에 봉착해 있으며 마땅한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아마 달러가 정말로 신뢰를 잃는 날이 오면 많은 대체재가 주목받을 것이다. 비트코인은 이때 주목받을 수 있는 충분한 역량과 가능성을 지닌 자산이라고 이해하면 지금으로선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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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크립토 투자 앱 샌드뱅크(Sandbank)의 공동 창업자 겸 COO이다. 가상자산의 주류 금융시장 편입을 믿고 다양한 가상자산 투자상품을 만들어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샌드뱅크를 만들었다. 국내에 올바르고 성숙한 가상자산 투자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각종 매스컴에 출연하여 지식을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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