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중계권자 선정을 놓고 잡음이 이어지고 있다. KLPGA 투어를 관장하는 한국여자프로골프투어(KLPGT)가 내놓은 입찰조건이 현재 중계권을 갖고 있는 SBS에 지나치게 유리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다. JTBC골프는 평가기준 등을 문제삼는 내용증명을 KLPGT에 보냈고, 종합 스포츠채널을 갖고 있는 CJ(tvN스포츠) 등은 “입찰 자격을 골프전문채널로 제한한 건 불공정하다”고 반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KLPGT는 이에 대해 “한국 여자골프의 중장기 발전에 필요한 조건을 내걸었을 뿐 특정 업체에 유리한 조건은 없다”며 반박했다. KLPGT는 20일 긴급 이사회를 열고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KLPGA 투어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인기가 급상승하면서 야구와 축구 못지 않은 인기 스포츠로 자리잡았다. 지난달 11일 KLPGA 투어의 간판선수인 임희정(22)과 박민지(24)가 팽팽한 승부를 펼쳤던 한국여자오픈 최종 라운드의 시청률은 최고 2.031%를 기록했다. 수많은 방송사와 콘텐츠 업체들이 이번 입찰에 촉각을 곤두세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중계권을 갖고 있는 SBS골프는 ‘수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KLPGA 투어 중계권을 잃으면 SBS골프는 사실상 ‘껍데기’만 남기 때문이다. ‘맞수’ JTBC골프도 이번 입찰에 뛰어든다. 여기에 SPOTV를 보유하고 있는 에이클라, tvN스포츠를 보유한 CJ ENM 등도 참여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플레이 등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업체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업계에서는 향후 5년간 중계권료가 연간 100억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 중계권료가 연 64억원인 만큼 50% 이상 늘어날 것이란 얘기다.
JTBC골프 관계자는 “한국야구위원회(KBO)가 2019년 중계권 입찰 때 ‘가격평가’ 비중을 60%로 잡은 것처럼 대부분의 스포츠 중계권 입찰에서 금액비중은 50%를 넘는다”며 “KLPGT가 정성평가에 65%를 배정한 건 우선협상대상자를 임의로 선정할 여지를 둔 것 아닌가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정규투어 중계권을 입찰하면서 하부 투어 지원 방안을 배점에 넣은 것에 대해선 “공정거래법상 ‘끼워팔기’ 논란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선 JTBC가 ‘6년전 악몽’이 재연될 걸 우려해 강력 반발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당시 입찰 때 JTBC는 중계료로 연 100억원을 썼지만, 64억원을 적어낸 SBS에 발목을 잡혔다. 정성평가에서 밀린 탓이다.
JTBC는 ‘심사 평가 결과에 대한 법률적 이의를 제기할 경우 20억원의 위약금을 내고 향후 중계권 사업자 신청자격을 박탈한다’는 서약서를 KLPGT가 요구한 것에 대해서도 불합리하다고 반발했다. KLPGT에 보낸 내용증명에도 해당 문구를 삭제해달라는 내용을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불합리한 결정에 불복하는 건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인데, 이를 부당하게 막는 걸로 해석될 수 있다는 걸 이유로 내건 것으로 전해졌다.
이 기준대로라면 현재 지원할 수 있는 곳은 골프 전문채널을 갖고 있는 SBS와 JTBC, SPOTV 뿐이다. “더 많이 업체가 입찰해야 중계권료가 높아지는 건 상식인데, KLPGT가 입찰 가능업체를 제한해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 길을 스스로 막았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CJ 산하 tvN스포츠는 골프 뿐 아니라 축구, 격투기 등도 다루는 종합 스포츠채널이다. 쿠팡플레이는 최근 손흥민 소속팀인 영국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홋스퍼 내한경기 중계로 ‘대박’을 터뜨리며 스포츠 중계 시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들 모두 ‘24시간 골프전문채널’이 아니기 때문에 입찰조건을 바꾸지 않는 한 KLPGA 중계권자가 될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KLPGT가 “컨소시엄은 구성할 수 없다”고 못박은 만큼 기존 골프전문 채널과 손을 잡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신규 사업자의 참여를 완전히 차단한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방송법은 한 분야의 전문 방송사업자도 주된 방송분야 외에 부수적으로 다른 방송 프로그램을 편성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그런데도 입찰 대상을 24시간 골프전문채널로 한정한 건 방송법 위반일 뿐 아니라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도 있다”고 지적했다. 공정거래법 제51조에서 금지하는 ‘일정 거래분야에서 현재 또는 장래의 사업자 수를 제한하는 행위’에 해당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KLPGA 정규 투어의 경우 대회 주최를 원하는 스폰서들이 줄을 서고 있다. 반면 하부 투어인 드림·점프투어는 타이틀 스폰서를 찾기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KLPGT가 단순히 중계권료를 많이 주는 사업자보다 여자 프로골프 투어를 고르게 성장시킬 수 있는 사업자를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KLPGT 관계자는 “KLPGA 투어의 힘은 탄탄한 하부 투어에서 나온다”며 “드림·점프투어를 함께 키워줄 파트너를 찾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업자 선정 입찰과 관련해 뒷말이 나오자 KLPGT는 20일 긴급 이사회를 열고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투어 관계자는 “이사들에게 이번 공모와 관련한 내용을 공유하고 투어의 방향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고 말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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