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보편적으로 쓰는 미터법은 19세기 프랑스에서 제정됐다. 1801년 미터법을 의무화한 프랑스는 1875년에는 영국, 독일 등 17개국과 협약을 맺어 미터법을 전파했다. 대부분 유럽지역에 미터법이 정착됐고 근대 기술 발전의 근간이 됐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금융투자 분야에도 도량형이 존재한다. 유망한 투자 대상을 선별해내는 각종 투자지표가 그것이다. 그동안 기업의 재무적 성과 지표가 주로 사용돼 왔으나, 최근 들어서는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와 같은 비재무적 측면을 고려하는 ESG 투자가 부각되고 있다. 기업들이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노력을 하는지, 사회적 이슈와 관련한 문제가 발생할 소지는 없는지, 기업의 지배구조는 건전한지 등을 고려해 투자하는 기관투자가가 많아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기관투자가를 위한 ESG 투자 기준 확립에 가장 앞장서 있는 곳은 유엔과 유럽연합(EU)이다. 유엔은 ESG 투자를 위한 책임투자원칙(PRI·principles for responsible investment)을 제시하고 있으며, EU는 친환경 투자의 기준이 되는 녹색분류체계(텍소노미)를 발표하고 있다. 많은 글로벌 연기금, 국부펀드가 이 기준에 따라 투자 의사 결정을 하고 있다. ESG 투자에 대한 현대판 도량형의 통일이라 할 만하다.
글로벌 ESG 트렌드가 한국에도 영향을 주면서 많은 기업이 ESG 관련 준비에 잰걸음이다. 금융투자회사들도 ESG 투자 상품을 제공하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ESG 투자 시 구체적이고 표준적인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혼란이 많은 것 같다. 현재 우리나라의 ESG 투자 기준은 평가기관마다 다양하고 평가 방법의 일관성도 부족해 투자자로서 아쉬움이 있다.
통일성 있고 일관된 ESG 투자 기준은 ESG 기업에 대한 자금 공급이 원활하고 효율적으로 이뤄지도록 할 수 있다. 이제 국내 ESG 투자에도 도량형의 통일을 이뤄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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